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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85. 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둥켜 안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85. 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둥켜 안다

건방진방랑자 2021. 2. 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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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보둥켜 안다

 

 

시간은 130분이 지나고 있었다. 배가 서서히 고파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아침도 먹지 않고 부랴부랴 나왔었지. 간단히 점심을 때우려고 슈퍼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내 행색을 보고 궁금한 듯 물어보신다. “날도 뜨신데 산에 오르려고?” 그래서 나도 이것저것 이야기해 드렸더니 할머니는 대단한 일을 한다며 격려해 주시더라. 그래서 편의점이 아닌데도 할머니에게 물 좀 끓여달라고 부탁하고 컵라면에 물을 받아서 나왔다.

 

 

▲ 걷는 길은 한적하고 좋았다.

 

 

 

건빵이 만난 사람: 경로를 바꾼 순간 찾아온 인연

 

평상에 앉아 라면을 먹으려 했는데 그곳엔 이미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20대 초중반인 어떤 남자는 이것저것 사서 혼자 먹고 있더라. 그 옆엔 오토바이가 있었다. 이런저런 상황으로 봐서는 그도 여행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라면을 들고 그를 의식하며 평상에 앉았고, 곧 말을 걸었다. 처음엔 그리로 다가오는 날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를 처음 봤을 땐 베트남 계열의 외국인인 것 같기도 해서 쉽게 말을 걸기가 어려웠는데 막상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한국인임이 확인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는 27살이고 오늘 하루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근교로 오토바이 여행을 나온 거란다. 가끔 이런 식으로 하루 여행을 하곤 한다고 덧붙인다. 나도 처음으로 국토종단을 떠나 목포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여행의 경위와 경로를 말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먹으려고 산 빵, 콜라, 우유를 몽땅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닌가. 난 고작 육포 한 조각을 주었을 뿐이었는데. 이런 걸 말로 주고 되로 받는다고 하는 거겠지. 그렇게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고 라면을 먹었다. 다 먹고 나선 잘 먹었노라고 슈퍼 할머니에게 인사드리러 갔더니 마침 수박을 드시고 계시더라. 그러면서 수박까지 챙겨주신다. 내 몫뿐 아니라, 오토바이 친구의 몫까지. 올해 처음 먹어보는 수박이었는데,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할머니와 오토바이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났다. 가슴 뭉클하도록 행복하던 순간이여라. 남한강을 계속 따라갔으면 이런 만남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만남에 필연(必然)’이란 딱지를 붙일 필요는 없겠지. 경로를 바꾼 순간 모든 것도 같이 달라진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내 마음마저 바꿀 수 있냐는 요청이지 않을까? 선택한 것에 100% 마음을 쏟는 자세! 아직도 수많은 과거의 기억들과 예전의 인연들에 얽매여 있는 나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 해가 저물어 가는 거리를 걷는다. 홀라 가는 길엔 나만의 길이 쫙 펼쳐져 있다.

 

 

 

여행이 만든 넉넉해짐

 

길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2차선 도로인데 차도 별로 다니지 않는다. 자연을 만끽하며 참 여유롭게 걷고 있다. 이따금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도 한다. 바람은 포근히 안겨왔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정겨워 보였다.

일상에 쪄들었을 때는 모든 게 삭막해보이고 사람들도 이해타산적으로만 보이더니, 오늘은 전혀 다르게 보이더라. 그래서 예전엔 신경질적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가 많았었다. 툭툭 쏘아붙이는 말투로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려고만 했다. 내 마음이 삭막하니, 모든 게 그런 식으로만 생각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햇살처럼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우리 모두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모두모두 고생이 많다고 말이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토닥토닥 위로를 건네며 소주 한 잔 같이 기울이고 싶다.

그렇게 잘난 인간도 그렇게 못난 인간도 없는 게 우리들의 삶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서로에 대해서 불신하고 적대감을 갖기보다 상처 많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날 수 있어야 하리라. ! 삶이 막막하던 어느 날, 새벽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그 쓰리던 마음을 함께 했던 친구가 그 순간 무척이나 그립더라.

 

 

▲ 돕기 위해 상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산다.

 

 

인용

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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