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강과 남한강은 같지만 다르다
두 강변의 공통점은 뭐니 뭐니 해도 자연경관이 빼어나다는 거였다. 그래서 볼거리도 많다. 한강을 서울에서만 봤었기 때문에 한강의 상류인 남한강은 볼품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오히려 한강보다 남한강이 훨씬 좋다. 물론 상류이기 때문에 물이 맑은 게 사실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하지만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다. 개발이 덜 되어 자연 그대로 흐르는 물이기에 보면서도 흥이 절로 난다. 개발은 인간의 편의를 따라 자연을 재조합하는 것이다. 거기엔 오로지 ‘인간의 편의’란 잣대로 모든 생물의 보금자리였던 곳을 파헤친다. 그러니 자연이 원래 지니고 있던 자연스러움과 생명력은 사라진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다른 모든 존재를 죽여야만 하는 건지? 이미 남한강도 나름대로 개발되고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한강에 비하면 덜했다. 남한강이나 북한강이나 그런 점에서 꽤나 매력적인 국토종단지였던 거다.
그렇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어제 이미 말했다시피 남한강변은 교통량이 많고 차들의 속도도 빨라 목숨을 내걸고 걸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다면 북한강변엔 어땠을까? 여긴 다행히도 2차선 도로다. 그래서 차가 많이 다니지도, 빨리 다니지도 않는다. 한적한 분위기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고 자연이 만들어낸 안락함도 즐길 수 있다. 이건 완벽한 국토종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자연은 볼수록 새롭고, 인공은 볼수록 지겹다
그런데도 불만이 있을까?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미 좋은 점을 들으며 짐작했을 거다. 한적하고도 볼거리가 많은 곳에 어김없이 들어서는 건물이 있다는 것을. 이름하야 ‘어른들의 휴식처’ *^^* 그렇다~ 이곳엔 모텔과 식당이 즐비했던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몰려 있는 게 아니라 북한강변을 따라 계속 나온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엔 ‘내가 같은 길을 돌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모텔과 음식점이 이곳에 있다니, 어느 정도 매상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분별하게 지어졌겠지. 그 덕(?)에 이 길을 따라 걸어가는 나의 여행은 참으로 무료하게 된 것이고 주변 풍경이 좋을지라도 단조로운 건물들 때문에 질리게 된 것이다.
자연은 보면 볼수록 새로운데, 인공은 보면 볼수록 지겨워진다. 솔직히 자연과 인공의 단순한 이분법엔 문제가 있다. 인공도 자연의 한 부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건축물들, 특히 사찰이나 향교는 자연 속에 어울린 인공의 예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사찰과 현대의 모텔의 차이는 뭘까? 그건 자연을 활용하여 건축하느냐, 자연을 파괴하여 건축하느냐의 차이일 거다. 불국사를 보면 자연지형을 활용한 건축형태가 눈에 띈다. 자연 위에 인공을 가미한 것이고, 그 인공이란 것도 자연적인 재료의 재활용에 그친다. 나무 위에 만든 새둥지처럼 말이다. 그러나 21세기 건축물은 이와 다르다. 전주 서부신시가지의 공사 현장이나, 연기군 정부청사 공사 현장에서 보았듯이 자연을 훼손하고 깎아내 자연을 인간의 구미에 맞게 완전히 뜯어고친다. 멀쩡히 있던 산이 어느 순간 없어지고, 없던 강이 어느새 생긴다. 거기에 콘크리트와 철재, 아스팔트가 덮어진다. 근대의 인공물이야말로 자연을 거스른 인공이며, 무언가를 파괴하고 얻은 생산품일 뿐이다. 그러니 보면 볼수록 무언가 어색하고 지겨워지는 건 당연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원령공주(もののけ姫)』라는 애니메이션에서처럼 어느 순간 자연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겠다며 인간이 만든 인공물들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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