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에 대한 후회를 감내할 수 있나?
잠을 자면서 뒤척였다. 빨래를 방바닥에 널어놓고 온돌판넬을 뜨겁게 틀어놓은 게 문제였다. 오죽했으면 새벽기도가 끝나고 온도를 낮추고 나서야 푹 잘 수 있었을까. 빨래가 다 마르기도 전에 내가 마를 뻔했다.^^;; 6시부터 깨다자다를 반복하다가 7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몸이 어찌나 무겁던지. 더 자고 싶은 맘이 간절한데도 더 잘 수 없는 걸 알기에 벌떡 일어났다. 꼭 강시가 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처럼^^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별 수 없다. 아침잠이 별로 없는 편이긴 하지만, 그게 어느 순간 이렇게 나를 옥죄기도 하니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오늘의 계획은 남양주를 지나 포천 내촌면으로 가는 거다. 늘 그렇듯 어디까지 가자는 생각은 없고 적당히 쉬엄쉬엄 가자는 생각뿐이다.
고성 통일 전망대를 최종목적지로 정하게 되면서 포천에 가는 건 괜한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양평이 포천과 홍천 사이에 있는 셈인데 바로 홍천 쪽으로 가면 강원도에 들어설 수 있는데, 포천에 들리게 되면 삥 돌아가는 꼴이 되니 말이다. 힘도 배로 들고 시간도 세 배로 든다.
그럼에도 가려고 하는 이유는 아는 사람이 “맛있는 포천갈비 살 게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도 음식이지만 그곳에 사람이 있기 때문에 간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이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무작정 떠난 길에 또 다른 인연의 장이 펼쳐져서 그렇게 맘껏 인연의 파고에 휩쓸리다가 전혀 다른 인생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다. 무지 거창한 언설 같지만 그렇게 조금씩 나가는 게 삶이지 싶다. “두려움, 불안, 고독, 어두움.... 그리고 어쩌면 희망? 해면으로 떠올라갈 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공각기동대』에서 쿠사나기는 바다에 잠수한 후 떠오를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다양한 감정 속에 난 어떤 사람인지 느껴보고 싶다.
국도 6번 길의 아이러니
6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을 택했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도 4차선이기에 피하고 싶었다. 다른 길을 찾아보려 무진 애썼지만,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이 길로 가기로 한 거다. 이왕 가기로 한 이상 마음 굳게 먹고 가야지. 그나마 남한강변을 따라가는 길이니 경치는 좋을 테지.
그런 기대를 하고서 가고 있는데 어찌나 차들이 쌩쌩 달리는지 구경할 새도 없더라. 조금 더 가보면 나아질 거라 기대했는데 가면 갈수록 오히려 첩첩산중(疊疊山中)이다. 지금껏 거쳐 왔던 어떤 국도와는 비교조차 거부하는 곳이었다.
도로가 무섭다고~ 차를 타고 다녀본 사람에겐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양평에서 구리로 향하는 6호선 국도를 따라 걸어보길 바란다. 생(生)과 사(死)의 갈림길에 놓인 존재의 나약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돌아가신 누이를 제사지내는 노래[祭亡妹歌]」라는 향가(鄕歌)에서 ‘삶과 죽음 갈림길 여기 있음에’라던 구절이 그 순간 생각날 정도였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한눈 팔거나, 내가 조금이라도 한눈 팔 경우 이승과 영영 Bye Bye! 하게 될 테니까. 생의 위협을 느끼며 걷는 기분이란 참 ‘거시기’ 했다. 그건 어쩌면 놀이기구를 탈 때 느끼게 되는 그 짜릿함 이상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확실히 그 이상이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내가 죽느냐 사느냐가 달린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경치는 최고다. 맘껏 즐기며 걸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차가 ‘징그럽게’ 많이 다녀 즐길 수가 없다. 공사하는 곳도 많아 대형트럭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인도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치일 뻔한 경우도 두 번이나 있었다. 차들이 지날 때마다 ‘쐐~앵~’하는 소음이 어찌나 신경을 곧추세우던지. 이대로 있다가는 신경 쇠약에 걸릴 것만 같았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마음가짐
그런 상황이다 보니 마음이 요동치더라. ‘이런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포천에 갈 것인가, 아니면 한산한 거리를 찾아 경로를 바꿀 것인가?’ 그런데 막상 여기까지 왔는데 경로를 바꾸려고 생각하니 지금껏 걸어온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길을 계속 걷고 싶은 생각도 없으니. 어이해야 할 거나?
예전에 친구와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선택하려 할 때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한쪽에 대한 마음이 49%이고, 다른 한쪽에 대한 마음이 51%인 거야.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지 않다 보니 당연히 고민하게 되는 거지. 그래서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십중팔구 놓쳐버린 다른 것에 대해 후회할 수밖에 없대. ‘그때 이것이 아닌 저것을 선택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야. 그런데 난 그렇게 고민되는 선택을 하게 될 때 말야.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선택하는 순간 그쪽에 마음을 100% 기울이려고. 후회하지 않도록 말야”
이 이야기를 할 당시만 해도 내 선택을 내가 존중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어떤 경우가 되든 주체적으로 잘 선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선택의 기로에 놓이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 이놈의 우유부단한 성격이란.
‘계속 갈까, 바꿀까?’를 고민하는 중에도 여전히 내 다리(foot)는 걷고 있었다.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에 온 신경이 마비되었고 머리는 한없이 복잡해지기 시작했지만, 몸은 관성에 따라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눈앞에 물 위에 건설된 긴 다리(bridge)가 보였다. ‘일반도로에서도 이렇게 위협적인데 저 고가다리에 오르면 얼마나 더 위험할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그 생각이 드니 철퍼덕 주저앉고 싶더라.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거기를 건너야 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양수리가 나올 것이고 그곳에서 계속 남한강을 따라 갈 것인지, 북한강을 따라 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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