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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03.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03. 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건방진방랑자 2021. 2. 1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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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여행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

 

 

춘천에서 친구와 헤어지고 양구에 도착한 시간은 1110분이었다. 지도가 없으니 디카를 보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걷고 있다. 처음엔 그냥 돌아갈까?’하는 갈등을 하며 마지못해 걸었다. 어제 푹 쉬지 못한 탓인지 몸도 무겁고 마음마저 싱숭생숭하다. 목적마저 잃어버리고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으니 하긴 해야겠는데, 하긴 싫다. 때론 쉬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낼 때도 있다.

 

 

▲ 난 지금을 찾기 위해 걷고 있을 뿐이다.

 

 

 

허무하고, 지치고, 의욕 없는 그대에게 전해주는 비법

 

이런 위기에 특효약이란 게 있을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해볼까? 흔히 생각하는 이런 방법은 잠시동안의 힘듦을 줄여 줄지는 몰라도 내가 목표한 것에 이르도록 할 순 없다. 이건 한 순간의 위기가 아니라 내가 여행하는 내내 직면하게 될 위기이니 말이다.

역시 문제는 나 자신이기 때문에 외부의 것들에 의존하려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스스로 의욕을 상실했듯이 스스로 그걸 되찾으면 된다.

어떻게? 아주 요긴한 방법이 있다. 의욕을 상실한 모든 사람에게 다 통용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걷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진이 빠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진짜 효과가 만점인 방법이다. 누구 말마따나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마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모든 해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했듯이 몸을 부산히 놀려 걷다 보면 자기 안에 움츠려 있던 수많은 가능성과 잠재능력도 발휘되게 마련이다.

그저 머리로만 생각하면 일은 복잡하게 꼬이지만 막상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막혔던 문제가 해결되곤 한다. 움직일 때 엔도르핀이 나오고 그건 의욕을 고취시키며 사람을 활기차게 만든다. 활기참은 다시 엔도르핀 생성으로, 엔도르핀 생성은 의욕의 고취로 이어지니 불행이 다가올 겨를이 없는 것이다.

그런 선순환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걷다 보니 무겁던 몸이 풀리기 시작했고 마음도 어느새 가벼워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생각도 몰라보게 밝아졌고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무뎌져 갔다. 얼마만큼 걸어야되는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놓인 자리에서 한 걸음씩 걸어가다 보면 그 얼마라는 목표량도 저절로 채워질 것이다. 그런 한 걸음이 쌓여 전라도에서 강원도까지 오게 했고 나의 생각들을 바꾸게 했으며 신체와 운동에 관한 새로운 관점도 갖게 했다. 거대한 무언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채찍질할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기운 내어 걸어가면 될뿐이다.

 

 

▲ 의욕이 없을 땐 걸으면 된다.

 

 

 

건빵이 만난 사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사람이라 생각해

 

점심을 먹으려 했지만, 막상 먹을 만한 곳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춘천은 막국수닭갈비가 유명하다. 난 아직 막국수를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막국수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거다.

3시가 되어서야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다. 막국수를 시켰는데, 그건 2인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백반을 시켜야 했다. 손님들은 한 명도 없고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한 잔씩 하고 계셨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더라. 나에게도 한 잔 주시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국물도 없었다ㅡㅡ;;

그곳에서 이야기 나누시던 아저씨에게 드디어 제대로 된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나의 행색을 보더니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국토종단을 한다고 하자 아저씨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난 앞뒤 따질 것 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해. 차도 있는데 뭐 하러 걸어 다녀. 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여유 부리기 전에 고추라도 한 군데 더 심겠구만.”이라고 말씀하셨다.

 

 

▲ 걸으며 브이도 하고 한껏 손도 흔들어본다.

 

 

지금껏 만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나를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했고 그런 말만을 했었다. 어찌 보면 그 말들로 인해 내가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구나.’하는 착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 만족을 위해서 떠났으면서도 어느 순간부턴 남의 이목에 집중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다 이런 정상적인반응을 대하고 나니 오히려 어리둥절하더라. 갑자기 당한 습격이라 더 그랬다. 스스로 여행의 참 의미를 잃어버렸다고나 할까.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내 자신을 돌아봤다. 그분 앞에서 직접적으로 반론을 펴진 않았지만, 내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었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떠난 것인가?’ ‘과연 그 아저씨가 나와 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국토종단을 떠나긴 했을까? 아니 정말 돈이 풍족하고 시간도 여유로웠다면 그분은 국토종단을 떠났을까?’하는 질문을 연거푸 던져 보았다. 모르긴 몰라도 쉽게 떠나진 못했을 거다. 이미 아저씨 말에 단서가 있으니 대답도 뻔했다. ‘차가 있는데 뭐 하러 걸어 다녀라는 대답을 통해 그건 시간문제, 돈 문제이기 이전에 마음의 문제가 더 크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또 다른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고로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보면 내가 미친 건 맞다. 빠르게 즐길 수 있는 방법들이 많은데도 난 굳이 걷는 것을 택했으며, 그것도 시험을 코앞에 두고 일분일초도 아까운 이때에 걷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뭐 하러 힘들게 걸어 다니느냐고? 바로 지금(Now)을 찾기 위해서다.

 

 

▲ 오전만 해도 죽을 상이었는데 한참 걷다보니 표정이 밝아졌다. 이러니 난 미친 사람이 맞다^^

 

 

취향 타는 채소, 누릿대를 맛보다

 

그분들은 멸치와 누릿대(누룩취)’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릿대라고 하니까 어제 아침 춘천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가 생각나더라. 버스에 탔는데 내 앞에 할머니 두 분이 앉아 누릿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한 할머니는 그 쌉싸름한 맛에 누릿대가 없으면 밥을 못 먹어.”라고 하셨고 다른 할머니는 도무지 입맛에 맞지 않아서 여전히 입에도 못 대.”라고 하셨다. ‘이렇게 극단적인 반응을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예사 물건은 아니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도대체 어떻게 생겼고 무슨 맛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던 누릿대를 하루 만에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거기서 술 마시던 한 아주머니는 타지 사람이었는데 누릿대가 맛있다며 연신 그걸 맛있게 드셨고 급기야 나에게 한번 먹어보라며 권하기도 했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마다할 리 없다. 그래서 하나를 집어서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첫 맛은 일반 채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상큼한 풀내음이 입안 가득 퍼지며 식욕을 돋워 주더라. 그런데 씹으면 씹을수록 기묘한 맛이 나는 거다. 씁쓸한 것 같기도 하고, 텁텁한 것 같기도 하고. 도무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맛이었다. 충격적이라고나 할까^^ 두 번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릿대는 나에게 깊은 맛이 무언지 미감을 통해 가르쳐 준 채소다.

 

 

▲ 한 번 먹어본 것이기에 그 땐 긴가민가하는 마음에 먹어봤지만, 다시 먹을 기회가 있다면 다시 먹고 싶던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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