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통장로교회에선 원통면이 내려다 보인다
그 가게에서 나와 열심히 걸었다. 디카에 저장된 지도로는 자세한 거리를 측정할 수 없다. 지도 이미지만을 봐서는 짧게 느껴져서 천천히 걷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예상과는 달리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다.
예측 실패로, 부리나케 걷다
디카 액정에 비친 사진만으로 예측해 봤을 땐 ‘면’ 소재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3~4시쯤이면 충분할 것 같았는데 그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또 엄청난 판단미스를 한 것이다. 그것 지도가 접혀지는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얼마나 더 걸어야 도착할지 예상조차 할 수 없게 되니 마음이 급해지더라. 그래서 그때부턴 쉬지 않고 경보 수준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 입구 근처라도 도착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교회 십자가라도 보이면 그만 걸으려 했는데 아무리 걸어도 마을은 보이지 않더라. 그렇게 걷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벌써 6시 50분이 되고 있었다. 거기에서 조금 더 걸으니 다행히도 면 소재지인 ‘원통(元通)’이 보이더라.
‘원통’이란 이름을 듣고 처음엔 한국전쟁으로 원통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그게 반영된 이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원산(元山)으로 가는 길목[通]에 있다고 하여 ‘원통(元通)’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원통장로교회에서 원통을 내려다보며
원통은 꽤 큰 마을이었다. 더욱이 오늘은 수요일이니 예배를 드리고 사정을 말하면 쉽게 잘 곳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여러 군데 보였지만, 언덕 위에 보이는 큰 교회로 들어갔다. 예배 후에 목사님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바로 승낙해주시더라. 교회가 공사하고 있는 관계로 모든 시설이 열악하고 따뜻한 곳에서 잘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뭐 그런 것 정도야 괜찮다. 그저 누울 곳만 있으면 된다.
창고 같은 부엌 옆방으로 들어갔다. 넓은 공간에 장롱이 있고 교회 의자가 보인다. 방 전체에선 한기가 느껴진다. 교회 의자의 스폰지 두 개를 깔아 매트로 만들고 그 위에 교회의 이불을 깔았다. 한기를 막으려 여러 겹 씌운 다음에 그곳에 누웠다. 쥐들이 돌아다니는지 천정에서 연신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참 정겨운 소리다. 천장에선 쥐들이 살고 그 밑에선 사람이 산다. 여느 시골집에서 느낄 수 있는 광경이다.
그때 유아실에서 주무신다는 할머님이 내려오시며 “커피 한 잔 타줄까?”라고 물으신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와 커피를 함께 마시며 교회 앞마당으로 나가 원통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원래 원통 사람이 아닌데, 이곳에 오시게 되었단다. 이 마을은 군인들 때문에 살아가는 마을이라면 꽤 평온하고 좋다고 하신다. 교회에서 내려다보는 원통은 번잡해 보였지만 조용했다.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여기저기 전광판 불빛이 어둠을 내몰고 있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밤인데도 싸늘하지 않고 포근하다. 할머니는 다시 유아실로 올라가셨고 난 방으로 들어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쥐들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들으며 점차 꿈속으로 떠나려 하고 있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양구행 버스비 |
6.000원 |
점심 백반 |
6.000원 |
총합 |
12.0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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