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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06. 빗길을 걸어 태백산맥 진부령을 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06. 빗길을 걸어 태백산맥 진부령을 넘다

건방진방랑자 2021. 2. 1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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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길을 걸어 태백산맥 진부령을 넘다

 

 

이번 여행 중 최고의 여행 코스를 뽑으라면 단연 목포ㆍ무안 코스였다. 사실 그 코스는 별 볼게 없었다. 그저 4차선 1번 국도를 따라 가는 지겨운 길이기에 볼거리도, 걷는 즐거움도 없었다.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도로까지 4차로라 차들이 쌩쌩 다닌다.

 

 

 

빗속 국토종단의 낭만

 

그런데도 최고로 꼽는 이유는 나의 첫 국토종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빗길 여행의 낭만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나오면 대부분 비가 많이 오니까 오늘 하루는 쉬는 게 어때?’라는 문자를 보내온다. 이런 식의 국토종단을 해보지 않았다면 그런 말에 두말할 필요도 없이 따랐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걷던 그 길이 빗길이었던 덕에 그런 생각이 확 바뀌었다.

오히려 햇볕 쨍쨍한 날의 여행보다 비를 맞으며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빗길 여행이 더 좋다. 빗속의 자유라고나 할까. 스님들이 방안에 들어가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하시며, 그 안에서 자유를 만끽한다고 한다. ‘어떻게 꽉 막힌 공간에서 자유를 운운할 수 있을까?’, ‘구속도 그런 구속이 없을 텐데 자유라니? 그것이야말로 자기 최면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처음엔 의아해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뜻이 무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건 공간의 제약이나 환경의 제약 너머의 문제였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제약이 있기에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거다. 공간이 나를 가두는 게 아니라, 나의 의식이 나를 가둘 뿐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환경에 의해 억압당하고 편협해졌노라고 분통을 터뜨리곤 한다. 어느 순간 환경은 나의 위축과 실패를 합리화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바로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이 자신을 구속하지 않게 되면 그땐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결국 진정한 자유는 자신을 얽어매는 일체의 집착(執著)ㆍ고착(固着)ㆍ환상(幻像)’에서 벗어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거다. 난 그와 비슷한 체험을 빗길을 걸으며 했던 거 같다. 비는 나의 행동을 제약하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도리어 정신은 맑아졌다. 그런 기분을 오늘 다시 느낄 수 있을지 기대된다.

 

 

▲ 도로공사까지 진행되고 있어 걷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라.

 

 

 

빗길 국토종단의 매력

 

원통에서 미시령 부근까진 차들의 통행도 많고 인도도 좁아 대형차가 올 때면 멈춰서 기다려야 했다. 도로에 빗물이 고여 있는데, 그곳에 차들이 지날 때마다 폭포수가 되어 내 몸에 날라온다. 그렇지 않아도 흠뻑 젖어 생쥐꼴이 됐는데 차에서 날라오는 빗물까지 맞으니 이건 뭐 사람꼴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형차가 오기라도 하면 몸을 돌려 등을 보이고 있어야 했다. 차도 신경써야 하고 차가 튕기는 빗물도 신경써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 4차선 도로의 빗길 여행은 목숨을 내건 여행이었다. 무안으로 향하던 길은 그나마 인도가 넓어서 이렇게까지 차를 신경쓰며 걷진 않았던 것 같은데 여긴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큰 도로를 빨리 벗어나려고 전속력으로 걸었다.

그러다 드디어 진부령으로 꺾는 길이 나왔다. 거기에 있는 휴게소에서 비에 흠뻑 젖은 우의와 배낭을 정비하고 잠시 쉬었다. 진부령 고갯길로 접어드니 그때부턴 여행하는 기분이 나더라. 거긴 2차선 도로였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오로지 빗속을 걷고 있는 자신에만 집중하며 걸을 수 있었다.

그제야 빗길 여행의 매력이 무언지도 알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직면(直面)’이었다. 그간 피해 다니고 숨어다니지 않았었나? 햇빛을 피한다며 그늘로만 다녔고 나들이를 할 땐 썬크림 듬뿍 바르고 모자를 썼다. 비는 어떻고? 비가 오면 조용한 카페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내리는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어 했었다. 그 비속에 들어가 한껏 맞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더욱이 비를 맞고 다니면 궁상맞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그런 식으로 자연의 변화를 피해 다니며 꽁꽁 숨기에 바빴던 내가 그걸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건 의식의 전환이라 할만하다. ‘산성비운운하며 자연을 타자화, 저주화하던 과거를 버리고 동화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빗길 여행은 고로 자연과 나와의 조화를 꿈꾸는 여행인 셈이다. ‘자연합일(自然合一)’이야말로 빗길 여행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 비는 오고 산에선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말을 믿으니 맘이 놓이고, 현실을 보니 맘이 졸이다

 

조금 불안했던 것은 진부령 부근부터는 마을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산 근처에 마을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고성까지 가야한다는 얘긴데 막상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걷고 나서 표지판을 보니 간성 49Km’라지 않은가. 아무리 빨리 걸어도 오늘내로 갈 수 없는 거리다. 더욱이 이런 빗길에선 더더욱 무리다.

막 걷다보니 꽤 큰 마을이 나왔다. 교회도 두 군데나 있다. 시간은 이미 2시였기 때문에 멈추기도 걷기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밥을 먹으며 진부령 쪽에 교회가 있냐고 물어보니, 주인아저씨는 정상에 있다고 알려 주신다. 교회까지 거리는 10Km쯤 되고 진부령에서 내려가는 길에도 교회가 있다고 하신다. 10Km면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니, 지금부터 천천히 걸어도 된다. 금방 전까지 오늘 고성에 도착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주인아저씨의 말을 들으니 금세 맘이 놓였다. 역시 조금이라도 알면 힘이 된다. 여기에 사는 분의 이야기이니 믿어야지. 이제부턴 느긋하게 즐기며 걸어가면 된다.

지금 백두대간을 넘고 있다. 당연히 오기 전에는 걱정이 됐다. ‘산맥을 넘는 길은 산길이니 힘들 테고 길을 잃으면 어쩌나, 험하면 어쩌나, 엄청 높으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했었다. 처음엔 어떤 상황인지 몰랐기에 미시령을 넘어 속초로 가려고 했다. 근데 기도원에서 만난 아저씨가 뭐 하러 힘든 길로 가냐며 진부령으로 가야 편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때 경로를 급히 수정해서 이리로 오게 된 것이다.

진부령을 넘는 길은 정말 완만하더라. 나의 걱정이 너무 과했다 싶게 높지도 않았고 일반도로였다. 걷다보니 어느새 정상 근처에 다다랐고 거짓말처럼 저 멀리 십자가도 보였다. 정상에 십자가라니, 왠지 어색한 풍경이다. 저것도 체제 선전용 교회이려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십자가는 부대 안에 있는 거였다. , 군부대 교회란 말씀.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하긴 뭔 정상에 교회인가? 그 곳까지 누가 자주 온다고? 바로 옆에 작은 민간 교회가 있었지만 작고 사택도 붙어 있지 않았다.

 

 

▲ 진부령을 넘게 될 줄이야. 여행을 하면 그곳에 길이 있기에 생각지도 못한 길을 절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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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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