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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107.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사람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107.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사람

건방진방랑자 2021. 2. 1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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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사람

 

 

정상에서 하룻밤 신세질 수 있을 거라는 계획이 그렇게 어이없이 무너지니 맘이 급해지더라.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다. 내려가다가도 교회가 있다고 하셨으니까. 그 말을 믿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 금강산의 관문이다. 전차 방벽이 쳐져 있지만 광고판이 달려 있다.

 

 

 

살기 위한 발악, 히치하이킹

 

내려가는 길은 전형적인 산길 도로더라. 빙글빙글 꼬이고 꼬였다. 하지만 경치 하나는 예술이었는데 비는 오고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잘 곳을 못 구할 수도 있기에 마음이 급해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려가다보니 민박집만 많더라.

어느덧 시간은 7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산 속이고 비 오는 날인지라 해도 빨리 져서 벌써부터 어둑어둑하다. 나는 아까부터 차 진행방향과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다. ‘차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라여행의 제1규칙을 깬 것이다. 여차하면 차를 잡아타고 간성으로 갈 생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근데 그때 자꾸 마을 비슷한 곳이 나와서 교회가 있나 살펴보게 되더라. 그래봐야 군부대 지역이거나 소규모 마을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 눈을 파는 사이에 경찰차도 유유히 내 곁을 지나가 버렸다.

 

 

▲ 걷고 또 걷는다. 산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저문다.

 

 

몸은 추위에 떨렸고 마음은 불안에 떨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이 느껴진다. 괜히 낮에 아저씨에게 여쭈었나 보다. 아는 게 힘이 아니라 병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미 엎어진 물이니 수습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빗속에서 노숙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 있다.

몇 번이고 오는 차를 향해 손을 들려다가 그러지 못했다. 그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아직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나 보다. 그러던 중에 1ton 트럭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 순간 손을 흔들게 되었다. 의식이 쪽팔리다고 막기 전에 이미 손은 저절로 흔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때론 생존욕구가 발동하면 의식보단 본능에 사람이 충실해지게 되는 건가 보다.

몇 번이고 손을 흔들었더니 차를 세워 주시더라. 나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비에 흠뻑 젖은 낯선 사람이니 간첩이나 강도로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창문에 대고 국토종단 중인데 간성까지 태워주세요.”라고 한 마디 했다.

그랬더니 다른 말도 일절 없이 바로 타라고 하시더라. 내가 트럭 짐칸에 올라타려 하자, 아저씨는 앞으로 와서 앉으라고 까지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찌나 놀랍고도 반갑던지. 태워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차 시트가 젖는 것까지 감수하신 거다. ‘아즘찬이 또 아즘찬이 아즘찬이구만요(아슴찮다: 방언의 형태로 '아즘찮다'로 쓰이기도 하며 '고맙다'는 의미다)이걸로 십년감수했다. 11초 앞도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 그래도 멈춰선 안 되기에 걷고 또 걷는다.

 

 

 

건빵이 만난 사람: 낯선 이를 과감히 태워줄 수 있던 사람

 

아저씨는 국토종단을 긍정하는 분이셨다. “인생이란 긴 터널 가운데 그런 기간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가족이 함께 걸어서 여행하는 걸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으시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은 나 혼자 이렇게 다니지만 언젠가 나의 아들, 딸과 함께 내 국토 산하를 걸으며 한 걸음의 철학을 몸소 느끼게 될 날도 올 것이다. 그런 내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 분 덕에 난 살았다. 간성에 도착해선 교회를 찾을까 하다가 하루종일 이것저것에 시달렸기 때문에 여관에서 자기로 했다. 내일이나 모레면 끝날 여행이니 이런 식의 선물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통닭을 시키고 맥주를 사서 작은 파티를 했다.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니 일 분, 일 초도 여행 중엔 예측 불가능하다. 지도만 있을 뿐 그 길에 뭐가 있고 어떤 상황이 생길지 세세히 알 순 없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대가 된다. 과연 어떤 풍경들이 나오고 어떤 인연들을 만나게 될까? 또한 같은 이유로 걱정도 된다. 어떤 풍경 때문에 불안에 떨며 어떤 인연 때문에 삶이 괴로워질까? 결국 삶이란 이런 두 가지 생각의 어느 쯤에서 나의 마음을 다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우연을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 미지수(未知數)에 몸을 맡길 것인가, 지수(知數)만을 찾아갈 것인가?

 

 

▲ 이 길을 걷다가 마침내 히치하이킹을 했다.

 

 

 

지출내역

 

내용

금액

아침 백반

5.000

점심

5.000

통닭&맥주

21.000

여관비

25.000

총합

56.000

 

 

인용

목차

사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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