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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09년 국토종단 - 90. 한 걸음의 철학[가평⇒춘천](09.05.15.금)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09년 국토종단 - 90. 한 걸음의 철학[가평⇒춘천](09.05.15.금)

건방진방랑자 2021. 2. 7.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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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의 철학

 

 

교회에서 푹 잔 것 같은데 왜 이리 몸이 무겁지? 잠자리도 낯설고 더욱이 예배당에서 자는 만큼 새벽기도를 하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맘 놓고 자지 못한 탓이겠지. 애초에 교회에서 자려 할 땐 이 모든 걸 각오하고서 한 것이기에 그저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을 허락해줬다는 사실에 고마울 뿐이다.

 

 

▲ 강원도까지 오게 되다니, 꿈만 같다.

 

 

 

밥보다 잠이 고프던 날

 

새벽 기도를 끝내고 잘 자고 있는데 목사님께서 아침을 가져오시더라. 또 어제 저녁처럼 직접 배달이다~ 내려와서 가져가라고 해도 될 텐데, 목사님도 괜한 방랑객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누군가, 더욱이 불청객(不請客)이 나의 공간에 들어온다는 건 이래저래 신경 쓸 게 이처럼 많다. 섭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우리네 접대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목사님의 등장으로 인해 이제 막 들려던 잠을 아쉽게 떠나보내야 했다. 잠아 지금은 너와 만날 때가 아닌가 보다. 안녕~ 좀 있다가 다시 만나자. 무거운 눈꺼풀을 치켜뜨고 밥을 먹었다. 배가 고프다기보단 잠이 더 고팠던 순간이지만 어쩔 텐가? 여행을 하면서 푹 자길 바란다면 그거야말로 욕심이겠지. 혹시나 여기가 집이였다면 하루 푹 쉬며 부족한 잠을 보충했을 것이다. 그만큼 일주일 정도 여행을 하며 피곤이 쌓였다.

 

 

▲ 교회에 마련된 나의 잠자리. 왜 이리 몸이 무겁지.

 

 

 

한 걸음씩 걸은 것밖에

 

오늘은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에 들어가는 날이다. 지금껏 전라남도전라북도충청남도충청북도경기도를 거쳐 왔다. 각 도의 경계지점을 넘어 새로운 도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며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수고한 나를 무한정 칭찬해주기도 했다. 경계선이라는 게 눈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나눠놓은 선에 불과하지만 그걸 넘어섰다는 것만으로도 혹 나의 한계를 넘어선 마냥 기분이 남달랐다. 더욱이 여기는 나의 최종 목적지가 있는 강원도이니 말이다. 떠날 때만해도 상상조차 되지 않던 순간이었는데 이젠 어느덧 정말 보인다.

군대에서 신병이 오면 장난을 친다. 신병에게 고참이 다가가 주먹을 눈 가까이에 대며 뭐가 보이냐?”라고 묻는다. 그러면 신병은 으레 아무 것도 안 보입니다.”라거나 캄캄하기만 합니다라는 대답을 한다. 이렇게 대답이 나왔다면 고참은 이미 목표 달성을 한 셈이다. 듣고 싶었던 대답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며 정해진 다음 대사를 아주 힘 팍팍 주고 한다. “이게 바로 니 전역날이다.”

이처럼 국토종단을 떠날 땐 도착지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 거란 상상도 하질 못했다. 그런데 정말 이제 강원도에 들어서게 되고, 머지 않아 그토록 바라던 고성 통일전망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입성하는 순간.

 

 

어느덧 걷기 시작한 지 23(전주에서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더하면 27일 만에)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어 여기에 도착했다. 전주에서 목포로 떠날 땐 막연히 난 할 수 있다는 뜬구름 잡는 생각만 했지, 진짜 하게 될 지는 미지수였다. 그런데 지금 그 뜬구름같은 생각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한 걸음씩 걸음을 내딛는 것뿐이었다. 순간으로 보면 작은 한 걸음에 불과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이니 이렇게 나를 강원도까지 오게 한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이걸 한 걸음의 철학이라 부른다. 보잘 것 없는 작은 행동이라도 성실함이 밑바탕이 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성과를 만들어내니 말이다. 이처럼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한 번 세운 계획은 결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한 번 세운 계획을 3일이라도 실천했다면 그건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더욱이 삼일마다 깨질 계획일지라도 다시 3일 후에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고, 또 다시 3일 후에 계획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다면 내가 목포에서 강원도까지 올 수 있었듯이 그 실천력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한 현실을 만들어내리라.

 

 

▲ 지금은 신축된 노선에 전철이 다니지만 이땐 단선 디젤 기차만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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