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에 이른 여행의 아쉬움과 상쾌함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눈을 떠서 방 안을 둘러본다. 방 안엔 어제 널어놓은 빨래가 있고 욕실엔 우의가 있다. 방안은 어지러웠는데도 기분만은 상쾌하다니^^ 비 온 후에 갠 날씨 탓일까? 그게 아니면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어느 이유 때문이라 꼭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만큼이나 내 마음도 환했다. 그리고 오늘은 마치 새로운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도 한껏 들고 말이다.
상쾌함과 아쉬움 그 사이
여행을 떠난 지 오늘로 딱 한 달 되는 날이다(예비군 훈련 때문에 집에서 머문 날을 빼고서 계산할 때). 한 달 동안 한곳에 머물지 않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한곳에 머물던 예전이 그리워지던걸. 그건 지금 이 순간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경험을 통해 예전의 일들이 새롭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한참을 걷다 보면 피곤해진다. 그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야 할 곳을 찾아야 하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처럼 헤맬 필요없이 자신의 집에 들어가면 된다. 완벽히 대조가 되는 상황이니 왠지 서러운 마음이 드는 거다. 석양빛이 하늘을 물들 때쯤이면 내 마음도 바빠진다. 다행히 마을에 도착해 있다면 마음이라도 한시름 놓일 텐데 그게 아닐 때가 문제다. 어제저녁과 진천군 초평으로 가던 그날 밤이 꼭 그랬지. 그때의 두려움과 긴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막막한 때에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보게 되면 여행을 그만두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물씬 든다.
지금껏 여행의 좋은 점이 그러한 긴장과 설렘에 있었다고 했지만 바로 그 동일한 이유 때문에 빨리 그만두고 싶다는 건 아이러니다. 바로 그와 같은 두려움ㆍ긴장이 이제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상쾌한 기분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상쾌한 기분 반대편에 아쉬운 마음도 들더라.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했던 일이니 홀가분한 마음과 섭섭한 마음이 같이 드는 거겠지. 이 여행을 떠난 나 자신에 대해서는 만족하지만 많이 못 느끼고 많은 부분에서 미숙했던 ‘미완의 여행’에 대해서는 섭섭한 거다. 첫술 밥에 배부를 수 없다 해도 나의 가능성에 스스로 한계를 정하고 막아놓은 것 같아 찝찝하다.
떠나온 장소로 다시 돌아가기
어제 여행을 멈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어둡기도 했고 주위에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차가 오나 안 오나만 신경쓰며 걷다가 엉겁결에 차를 타고 왔기 때문이다. 단지 ‘간성 9Km’라는 팻말을 본 기억만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만 해도 택시를 잡아타고 그 지점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택시 기사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더라. “간성 9Km라는 팻말이 보이는 곳까지 가주세요”라고 하기엔 이상하니 말이다. 곰곰이 생각하는 데도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더라.
그래서 여관을 나오자마자 할 수 없이 버스정류장에 갔고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진부령을 넘어가는 버스가 있더라. ‘그걸 타면 어제 왔던 길로 거슬러 올라갈 테니, 팻말을 유심히 보다가 적당한 곳에서 내리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궁금해서 옆에 계시던 아저씨께 물어봤다. 그게 계기가 되어 한참 동안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글쎄 8시 30분 차는 진부령을 안 넘어간다는 것이다. 진부령은 넘지 않지만 ‘장신’이란 곳까지만 간단다. 어제 내려오면서 ‘장신’이란 팻말(장신이란 지역명을 보고 ‘큰 키(長身)’로 풀이하며 ‘이 지역엔 키 큰 분들만 사시나?’하는 생각을 하며 한참 웃었는데 제대로 살펴보니 ‘큰 귀신(長神)’이라더라. 그런 ‘오역 놀이’를 하며 지명을 본 덕에 기억에 남았다)을 본 기억이 있어서 괜찮다 싶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9Km 지점에서 내리려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가다가 어제 지나갔던 낯익은 광경이 나오자 바로 내려주라고 해서 내렸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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