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 정신으로 그려갈 사람여행
태종대를 다 둘러보고 김밥으로 요기하고 나니 시간은 4시 30분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부턴 찜질방을 찾기 위해 걸어야 한다. 첫날이라 무리할 생각은 없었는데 영도 쪽에서 사람들에게 찜질방의 위치를 물어보니 모른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계속 걸어야 했다.
찜질방 찾아 영도를 지나며, 한진중공업을 지나며
걷다 보니, 공장만 연이어 나온다. 이 좁은 공간에 공장이 밀집되어 있으니,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조금 걸으니, 한진 중공업이 나오더라. 파업 중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역사의 한복판을 걷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를 동지가 아닌, 소모품 정도로 간주하는 사장에 대해 노동자들은 단결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가 지날 땐 시위를 하진 않았으나, 여기저기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면서 그들의 시위에 힘을 보탰다.
공장 지대를 지나 걷다 보니 부산대교까지 오게 됐고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다시 물어보았는데도 아무도 모르더라. 그 순간 ‘이렇게 대형도시에 찜질방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라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결국 교통순경에게 물어봤고, 그분이 친히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여 알려주고 나서야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순간만큼 스마트폰이 탐났던 순간은 없었다. 알려준 위치를 찾아 부산역 부근까지 걸어왔고 나의 첫날 쉼터인 찜질방을 발견했다. 가볍게 시작한 여행이 처음부터 조금 꼬인 셈이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조금씩 이런 상황들에 익숙해져 갈 것이다.
나가수(나는 가수다) 정신
사람여행의 부제는 ‘걸음걸이에 삶이 영글어간다’이다. 여기서 덧붙여 ‘나가수 정신’으로 해보려 한다. 웬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어제 나가수는 네티즌들의 불만 폭발로 2주 분량을 한꺼번에 해줬다. 탈락자에게 재도전 기회를 부여한 저번 주 방송을 보고서 네티즌들은 불만을 드러냈다. 하나의 방송 때문에 사람들이 좌절감도 느낀다는 건, 오히려 이 프로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네티즌의 반응에 MBC는 신속하게 피디를 교체했다. 그런 여파로 김건모는 자진 사퇴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번 방송을 끝으로 프로그램 재정비를 위해 잠정적 휴식기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도 이미 녹화된 분량이 있었기에, 어제 165분의 긴 이야기가 반영되었던 것이다.
어제 이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눈에 눈물이 나고 손엔 땀이 날 정도의 엄청난 감동의 무대를 말이다. 비록 그들이 기존의 룰을 깬 것은 한 편으론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처사여서 짜증도 났지만, 그 짜증마저도 일거에 날려 버릴 정도로 이날 무대는 최고의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감동이란 평소엔 빈틈이 많아 인간적인 허점에 실망하게 되지만 적어도 자신의 일을 할 때만큼은 완벽하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일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는 실망감이 어느 순간 범접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비약하는 순간의 감정, 그게 바로 감동이 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여행 가방을 챙길 때 그들의 공연을 계속 봤던 건,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여행이 지향하는 바는 ‘나가수 정신’이라고 한 것이다. 인간적인 부족함, 그걸 꾸밈없이 보이되 여행을 하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면 주저하거나 낙담하지 말고 멋지게 이겨나가자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나에겐 여행하는 모든 여행지가 무대다. 그 무대에서 열정 가득하게 ‘나가수 정신’으로 나만의 작품을 완성해보리라.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전주-서부산 |
19.500원 |
김밥 |
2.000원 |
라면 |
1.000원 |
찜질방 |
7.000원 |
일일 총합 |
29.500원 |
총 지출 |
29.5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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