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에 삶은 영글어간다
살아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문학동네, 2008
09년에 했던 국토종단 여행기 5번째 글에 인용해 놓은 글이다. 부제 형식의 글로 국토종단이 지향하는 바를 담고 있다. 진즉부터 원하던 여행을 드디어 떠나며 ‘생생한 기쁨’을 담고자 했던 것인데, 그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일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반증이었던 것이다.
09년에 떠난 도보여행은 살기 위한 발악이었다
‘생생한 기쁨’이기보다 ‘축축 처지는 지루함’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 한 번 ‘빡시게’ 해본 적도 없이 운명처럼 주어진 그대로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 자신이 텅텅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진절머리가 나도록 흥미는 급속도로 사라졌으며 꼭 바다 위에 떠다니다 사라지고 마는 부평초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도보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를 ‘발악’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삶을 원한 것일 수도 있으나 삶의 극단에 몰려 발악으로 시작한 것이기에 그렇게 이름 붙였다. 그게 내 첫 여행의 이유였다.
도보여행을 끝마친 결과 삶이 더 이상 슬픔이거나 고통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걷는 발걸음에선 꽃이 폈고 내 존재가 고양되어 갔다. 바로 그 순간 ‘생생한 기쁨’이 어리는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물론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단언하건대 고통을 극복했을 때 느끼게 되는 기쁨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살아있음이 축복과 기쁨이 되던 순간의 기억들은 그래서 짜릿했다.
떨림과 불안도 살아있기에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났다. 이번에도 도보여행을 계획하게 된 건 2년 전의 심정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심정은 똑같되 마음만은 좀 가벼워졌다. 내일이면 그 첫발을 내딛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한 번 완주한 경험도 있는데,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미 경험은 있되, 그 뒤로 시간은 흘렀고 나 또한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나려는 장소 또한 다르니 말이다. 그때의 감각이나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경험이 있긴 하지만 새롭게 시작한다는 건 두려운 까닭이다. 그래서 이 시간 떨리는 마음으로 지금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곤 하나 이런 떨림도 당연한 것이고 결국 이 마음도 끌어안아야 된다는 걸 안다. 새로운 도전 때문에 떨린다는 것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걸음걸이에 삶이 영글어가는, 사람여행
이번 여행기의 부제는 ‘걸음걸이에 삶이 영글어간다’이다. 문장이 애매하게 표현됐지만 의미는 단순하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내 삶이 풍성해진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왜 그럴까? 거기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는 마음과 내 길을 직접 만들며 가겠다는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관점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게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는 따지지 않겠다. 상황에 몸을 내맡기고 함께 노니는 수밖에 없다. 호이징가(Huizinga)의 말처럼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가 되려 노력할 것이다.
집으로 보내는 마지막 밤. 내일부턴 새로운 곳에 있을 생각을 하니, 안락하고 포근한 내 방이 무척이나 그립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 순간 마지막 밤을 즐기며 푹 자야겠다. 일어나면 힘껏 나갈 수 있도록.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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