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두 가지 이유
떠남은 언제나 현실을 낯설게 보게 한다. 어제도 그제도 다녔던 길이고 예전부터 만났던 사람이다. 그래서 아무 감각, 감정이 없다고 하면 섭섭할진 몰라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일상이 된다는 건 이런 것이다.
떠나면 비로소 알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자주 갔던 장소, 자주 만나던 사람이라 해서 너무도 잘 안다고 착각하진 말자. 오히려 가장 가깝다고 느끼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다른 곳엔 여행 다닐지언정 자신이 사는 곳은 구석구석 다녀보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 뿐 사실일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할 때가 오면 그제야 잘 몰랐다는 사실을 알며 울고불고 할 지도 모른다.
전주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새로웠다. 자고 먹고 하던 집이며 학교로 오고 가던 거리, 그 모든 게 새삼스레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다시는 전주에 오지 않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자연히 복귀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장황한 너스레를 떠는 건 오버 아니냐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긴 말할 필요 없이 지금 있는 장소, 친근한 사람들을 떠나봐야 한다. 일상의 반복이 깨지는 순간, 찾아오는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삶이 늘 내 주위에서 꿈틀꿈틀 생동하고 있었음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왜 부산에서 시작하나?
이번엔 부산을 출발지로 정했다. 아무리 교통이 좋아지고 인터넷이 발달되었다 해도 호남과 영남 사이엔 보이지 않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다. 그건 지역감정 이상의 어떤 감정 같은 것이다. 지역감정을 충분히 이론적(정권 창출을 위한 악용, 지역이기주의)으로 알게 되면 심리적인 거리감은 무너진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는 괴리감은 어찌 할 수가 없다. 그걸 서로 간의 ‘차이’로 인정하고 얼싸안고 가면 별 것 아니지만, 지금처럼 지역감정까지 겹겹이 겹친 상태에선 ‘차별’로 느껴지기 십상이어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바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지역색은 지역색일 뿐 그게 우리의 감정을 규정할 순 없다. 사람이 사는 곳, 그래서 사람 향기가 나는 곳임을 느끼고 싶었다. 우린 사람이기에 빈틈도 있고 연약하기에 무리를 지어 하나의 사회를 만들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전라디언(전라도 사람들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 경상도에 가서 보고 싶었던 건, 심리적 거리감 너머에 분명히 사람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르지만 분명히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 ‘사람여행’을 시작하고 싶어서 부산을 첫 출발지로 정하게 되었다.
거기에 덧붙여 국토종단 때 아쉽게도 영남은 거쳐 가질 못했다. 목포에서 시작해서 고성으로 올라가다 보니 영남은 빗나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서해안의 목포가 출발점이었다면 동해안의 부산을 생각하는 건 매우 당연한 생각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어디로든 걷게 되는 영남을 제대로 관통하며 걷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영남사람들을 지근거리에서 대하며 그들의 사는 이야기를 듣게 될 가능이 크겠지. 영남을 훑고 가기 위해 부산을 첫 출발지로 정한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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