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는 연결하고 교환은 분리한다
아침이 되어 소파도 원래 자리로 놓고 난로도 옮겼다. 불청객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빨리 출발하려 했다. 씻고 돌아와 보니, 글쎄 테이블에 아침 식사가 놓여 있는 게 아닌가. 바로 그분이 손수 차려 주신 것이다.
그리고 떠날 때는 배웅까지 해주시며, 경주까지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하시더라.
사람여행②: 증여의 삶
그때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해주셨다. 무언가를 받은 만큼 그걸 준 사람에게 되갚아 줄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라는 것이다. 서양식의 얄팍한 논리인 ‘받은 만큼 준다(Give & Take)’의 ‘교환논리’가 아닌, ‘모든 것들은 소유되지 않고 순환한다’는 ‘증여논리’를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 도움론엔 나도 동감이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썩듯이, 재능이나 돈, 역량도 움켜쥐려고만 하면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걸 필요한 곳에 흘려보낼 수 있을 때, 삶이 무르익는 법이다. 돈을 버는 법보다 어떻게 써야 할지 더 고민해야 하고, 자신이 가진 역량을 어떤 방식으로 나눌지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난 이분에게서 바로 그런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아는 체하며, 온갖 현란한 언어를 구사하는 골방 철학자보다 자신의 삶 속에서 가치를 만들고 그걸 추구하고 있는 이런 분이 진실한 철학자이지 않을까. 바로 이분의 성함은 김희호(김 성바오로)씨다. “성바오로님 덕에 ‘사람여행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고 성당에 대해서도 좋은 이미지를 지닐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시간에 쫓겨 살기보다 누리며 살기
밀양에서 청도 매전까지 걷는 길은 영락없는 시골길이다. 부산에서 시작하여 김해를 거쳐 밀양까지 오는 길은 차들이 쌩쌩 달리는 길이었는데, 이런 길을 처음 걷게 되니 절로 휘파람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거기에 아침까지 든든히 먹고 출발하니 세상도 아름다워 보이고, 여행할 맛도 나더라.
완연한 봄기운이 느껴진다. 가만히 있으면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아침을 좀 맵게 먹었기 때문인지, 기분이 한껏 업되었기 때문인지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는 도중 큰 슈퍼는 보이지 않아 정유소에서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치토스를 샀다. 정자에 올라앉아 펼쳐놓고 봄기운을 만끽하며 먹고 마신다. 그때의 기분이란 ‘아주 그냥 죽여줘요~’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무언가에 구애됨 없이 시간을 누리고 자연을 즐기며 시원한 맥주 한 캔 들이키는 게 아니겠는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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