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여행 중 최초로 느낀 사람의 향기
매전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쉬엄쉬엄 왔더니, 5시 정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기에 규모가 꽤 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다. 교회도 하나밖에 없고. 지나가는 길에 보니 경찰서가 눈에 띈다. 정 안 되면 경찰서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통사정 해봐야지.
매전에서 잠자리를 구하다
청도 매전의 동산교회는 다행히도 문이 열려 있고 사택도 옆에 붙어 있더라. 그런데 아무도 안 계신다. 교회 계단에 앉아 여행기를 쓰며 기다렸다.
서서히 해는 저물어 가고 바람도 꽤나 세게 분다. 아직도 밤엔 싸늘하다.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데 처량하게 앉아 있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이 안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쓸쓸함과 불안들, 그리고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들까지 한꺼번에 떠올라 한없이 괴롭게 만든다. 이런 감정은 도보여행 때 공주 경천리에서 느꼈던 그 감정과 매우 똑같았다.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요동치는데 스산한 바람까지 몸속으로 파고드니, 삶의 비극이 더욱 극대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경찰서라는 최후의 방책이 있으니, 나름 믿는 구석은 있어 마음이 놓이긴 한다.
40분 정도가 지나니 승합차 한 대가 교회로 들어온다. 그리고 운전석에서 내리시던 분, 나이가 많아 보였다. 혹 목사님이 아니고 장로님일지도 모르기에 머뭇머뭇거렸다. 그래서 긴가민가한 목소리로 목사님이시냐고 물어보고 나서야 부탁을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별로 꺼려하는 기색 없이 흔쾌히 승낙해 주시더라. 사모님도 환영해주시며 바로 방으로 안내해주셨다. 오늘 묵을 곳은 교회 식당이다. 보일러도 돌려주시고 장판도 깔아주시며 최대한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신경 써 주시더라. 그러면서 저녁도 같이 먹을 거냐고 물으신다. 두 말할 필요 있는가 당연한 것을.
사람여행③: 낯선 이를 친근한 이처럼 대해주셨던 분들
맛있게 밥도 먹고 목사님ㆍ사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다. 모처럼만에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 저녁 성당에서 느꼈던 냉담함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기분이다.
지금껏 지나온 곳들은 형식적으로 잘 곳은 마련해줬을 뿐 사람으로서, 인격체로서 대우해주진 않았다. 그러니 ‘사람여행’ 중 ‘사람’이 빠진 씁쓸한 여행이 된 것이다.
그에 반해 오늘은 ‘사람’이 당당히 들어있는 여행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했다. 국토종단 때도 이런 순간이 몇 번 없었기에 이렇게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 줄 잘 안다.
동산교회 배성화 목사님, 이승란 사모님께 정말로 감사드린다. 내년에 정년퇴임을 하시더라도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그리고 원하시는 성직자로서의 일을 계속 하시며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금은 잠자리에 누워 여행기를 쓰고 있는데, 아까 전의 불안ㆍ긴장ㆍ두려움이 엄습하던 때가 마치 옛날 일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이래서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 하는 거겠지.(21:00)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맥주+과자 |
3.000원 |
일일 총합 |
3.000원 |
총 지출 |
63.500원 |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사람여행 - 28.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인연 (0) | 2021.02.15 |
---|---|
2011년 사람여행 - 27. 멋진 여행을 꿈꾸며 떠났으나 지루하게 걷고만 있다[청도 매전면⇒경주 산내면](11.04.02.토) (0) | 2021.02.15 |
2011년 사람여행 - 25. 증여는 연결하고 교환은 분리한다[밀양⇒청도 매전](11.04.01.금) (0) | 2021.02.15 |
2011년 사람여행 - 24. 성당 신부님의 냉담함에 대비되는 관리인의 인자함 (0) | 2021.02.15 |
2011년 사람여행 - 23. 영남 신공항 백지화와 도시 발전의 비전 (0) | 2021.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