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행을 꿈꾸며 떠났으나 지루하게 걷고만 있다
상쾌하게 일어났다. 사람여행 중에 집에서 자는 것처럼 편안하게 자보긴 처음이다. 아침밥도 함께 먹으니, 꼭 한 가족 같은 느낌이다.
사람여행③: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 묵은 것 같은 편안함
짐을 챙기고 나서려 하니, 사모님이 쇼핑백 같은 걸 내미신다. 무언가 하고 봤더니 음료수 몇 병과 물, 그리고 점심밥과 돈이 들어있다. 아침밥을 먹을 때, 사모님이 분주하게 부엌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걸 만들려 그러셨던 거였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주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그러면서 어디쯤 걷고 있는지, 간혹 연락도 하고 그러라고 신신당부를 하신다. 실제로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간혹 어디쯤 가느냐고, 몸은 어떠냐고 연락 주시며 걱정을 많이 해주셨다. 사모님은 자식이 있는 입장에서, 나를 보면 자식들이 생각나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역시 자신의 경험이 있어야 누군가의 힘듦에도 동참할 수 있는 법인가 보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교회 입구까지 나오셔서 내가 가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꼭 시골 할머니 집에서 하루 푹 쉬다가 가는 것 같더라.
오늘 여행길은 최고였다. 운문호(雲門湖)에 난 도로를 따라 빼어난 자연경관을 만끽하며 걸었다. 걷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코스였다. 국도 20번 운문호길은 도보 여행자에게 최고의 트래킹 코스가 아닌가 싶다. 오랜만에 최고의 코스를 걷게 되니, 절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은 창대하나 과정은 미약하다
‘계획은 창대하나 과정은 미약’한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는 새해 첫날 세우는 계획이나 방학 전에 세우는 계획 같은 경우다. 올해는 뭘 해보겠다느니, 방학 때 몇 시간만 자고 뭘 해보겠다느니 계획은 빼곡히 세운다. 하지만 막상 실천을 해야 할 때, 넉다운 되게 마련이다. 계획의 반의 반도 하지 못한 채 포기한다. 의욕만 앞섰지,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경우가 또 있다. 바로 도보여행이 그것이다.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시간을 보내겠다느니, 내 앞날의 디딤돌을 만들겠다느니, 내 자신을 만나보겠다느니’하는 식의 거창한 계획들을 세운다. 그러다 정작 떠나보면 완전히 딴 판이다. 배낭은 무겁지, 길은 멀지, 아무리 걸어도 그 자리만 맴도는 것 같지, ‘이 좋은 날 뭐 하고 있냐?’하는 온갖 망상과 힘겨움이 밀려든다. 그러니 무작정 걷기에 바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걷는다. 시작할 때의 의도는 환상에 가까웠으나, 현실은 냉혹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보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즐거움도 없고 잘 끝낸다 해도 어떤 변화도 없다. 그냥 누군가에게 말할 거리만 생겼을 뿐, 특별한 게 없는 것이다. 시작한 의도와 한참이나 빗나간 결말이고 창대한 시작이 무색할 정도로 미약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도보여행을 하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여기에 빠져 마지 못해 도보여행을 하기 전에 초심을 떠올리며 이 순간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럴 때에야 창대한 계획에 걸맞은 멋진 도보여행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왜 이런 거창한 말로 도보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냐면, 오늘 이와 같은 함정에 빠진 경우를 보았기 때문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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