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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사람여행 - 24. 성당 신부님의 냉담함에 대비되는 관리인의 인자함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24. 성당 신부님의 냉담함에 대비되는 관리인의 인자함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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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신부님의 냉담함에 대비되는 관리인의 인자함

 

 

성당에서 자 보기도 처음이고 난방이 안 되는 곳에서 자보는 것도 처음이다. 신부님도 마지못해 승낙해 주신 셈이다. 저녁에 무슨 교육이 있는지 사람들이 꽤 많이 오간다. 그래서 씻지도 못하고 짐도 그래도 둔 채 하릴없이 한 켠에 놓인 신문을 읽고 있어야 했다.

 

 

 

성당의 불청객이 되어

 

그때 음식 배달부가 들어오더니 테이블에 자장면 세 개를 내려놓는다. 두 분의 관리인에 나까지 합하면 딱 세 사람이었기에 은근히 기대했다.

그런데 그때 관리인 한 분과 양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오더니, 말 한마디 없이 배달 음식을 가지고 옆방으로 들어가더라. 완전 생무시를 당하는 상황이었기에, ‘이거 내가 사람들 눈에 안 보이는 건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썩소를 짓게 되었다. 더욱이 그 관리인은 날 사무실로 데려가 주신 분으로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신 분이었는데도 나를 거의 배경 취급하셨던 것이다.

그 자장면을 주라는 건 아니다. 단지 밥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묻거나, 시키기 전에 같이 시킬 거냐고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없었다는 것에 황당하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심을 늦게 먹은 터라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그런 식의 대접을 받으니 없던 식욕이 막 생기더라. 이래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게 되나 보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먹으러 언덕을 내려가기도 뭣하고, 잠을 자자니 잘 곳도 확실히 정해지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있어야 했다.

 

 

 

사람여행: 자신의 저녁밥을 나에게 주다

 

그때 나머지 한 분의 관리인이 들어오시더라. 그분은 나에게 저녁은 어떻게 할 거예요?”라고 물으셨다. 그 한마디가 어찌나 감사하던지. 이미 이곳의 분위기를 대충 파악한 터라 내려가서 먹을 거라고 둘러댔다. 그 말을 듣고 그분도 옆방으로 들어가셨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분이 다시 나오시더니 대뜸 따라 오라신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분은 나를 데리고 옆방으로 가신다. 아까 들어갔던 두 분은 자장면을 드시고 계셨고, 하나 남은 자장면을 나에게 주며 먹으란다. 아무리 염치가 없기로서니, 그분이 드실 저녁밥을 어떻게 덥석 받아먹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망설이고 있으니, 자긴 사무실 지하에 사는데 거기서 밥을 먹으면 된다고 하신다. 그래서 눈물 젖은 자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겪고 보니, 그런 배려가 얼마나 큰 마음씀씀이인 줄을 알겠더라. 만약, 처음부터 정중하게 대해주고 먹을 것까지 챙겨줬다면, 이렇게까지 감사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손님(불청객도 손님은 손님이다. 그래서 ()’이란 한자가 들어간다)이기에 당연한 대우를 받는 거라 생각할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극과 극의 대우를 받고 보니, 그렇게 신경 써주신 그분이 대단해 보이더라. 바로 이런 인연으로 그분과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람여행이란 제목에 맞게 오늘은 그분 덕에 제대로 사람여행을 하게 되었다.

 

 

▲ '김씨표류기'의 한 장면. 정말 이 순간 나에겐 짜장이 눈물의 짜장이었고 김씨처럼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여행: 필부필부에게 느끼는 참종교인의 모습

 

그때 해주신 얘기는 좀 충격적이었다. 좀 더 늦은 시간에 왔으면 신부님이 안 계셔서, 자기 재량으로 방에서 잘 수 있도록 해줬을 것이란다. 그런데 이미 신부님이 여기서 자라고 하셨기에, 지금은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서 어떻게 자냐고 걱정해 주신다.

솔직히 신부님에게 종교인의 모습을 느끼기보다 필부필부(匹夫匹婦)인 그분에게서 인간미, 참 종교인의 모습을 느꼈다.

자기 일처럼 느끼고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예수가 하층민들과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데엔 공감의 능력이 있었던 것처럼 그분도 그랬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으려면, 질적으로 다양한 삶의 경험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평탄한 삶을 살고, 어떤 특권의식을 가지고 한 길만을 걸어온 사람은 하층민과 어울릴 수도 없고, 공감할 수는 더더욱 없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부모들처럼 이해는커녕 배격하고 담을 쌓으려 할 뿐이다. 그분에겐 그런 추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 '차이'를 '차별'로 가르치고, 그걸 정당화한다. 이미 학교에서부터 이런 식으로 배운 아이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잘 곳은 한기가 가득하고 난방 시설도 안 되어 있었다. 방도 아니고 소파에서 자야 하니 더욱 걱정이 되었다. 추워서 벌벌 떨다 제대로 못 자면 어쩌나 불안했다. 그래서 있는 옷을 다 껴입었던 것이다. 우의까지 입고서 껴입은 옷을 살펴보니 상의는 5, 하의는 3벌이었다. 그리고 양말도 두 겹을 신었다.

좀 답답했지만 이 정도면 안심하고 잘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때 그분이 오시더니, 난로를 가져다주신 것이다. 기름으로 켜지는 난로였는데, 난로를 발쪽에 켜놓고 자니 온기가 느껴져 푹 잘 수 있었다.

 

 

▲ 하마터면 못내 섭섭할 뻔 했다. 그리고 성당에 대해서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질 뻔도 했다. 하지만 나눠준 자장면과 난로 덕에 풀렸다.

 

 

 

여행 경로를 바꾸다

 

그럼 이쯤에서 경로를 바꾼 이야기를 해볼까. 원래는 부산청도문경충주남양주파주를 거치는 대각선 경로로 걸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되면 국토종단과 함께 남한을 골고루 돌아본 것이 된다. 그런데 3일간 걸어보니 대도시를 걷는 건 역시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담보로 고통을 감내할 필욘 없었다. 더욱이 도시는 거기서 거기이기에 도시를 피하는 경로를 고민해야 했던 것이다.

우선 두 가지 경로를 생각했다. 첫째, 동해안을 따라 속초까지 올라가 원주충주 등을 거쳐 내륙 노선을 따라 전주를 거쳐 여수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이건 내가 별로 가보지 않은 곳을 중심으로 남한의 동쪽을 돌아보겠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둘째,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 충주천안당진으로 서해까지 가서 서해를 따라 군산까지 내려온 후 전주로 복귀하겠다는 계획이다. 남한의 외곽 노선을 따라 걸으며 요소요소를 보고 싶다는 발상에서 나왔다. 동해와 서해를 동시에 여행하면서 무엇이 어떻게 같고 다른 지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직은 어느 경로로 갈지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어차피 속초까지 올라가는 건 똑같기 때문에 거기까지 간 후 상황을 봐서 정할 생각이다. 여행이란 상황에 따라 바뀌게 마련이다. ‘사람여행은 변화를 받아들이며 맘껏 누벼볼 생각으로 나왔으니, 그 생각에 충실한 여행이 되도록 할 것이다.

길을 떠나라, 한 번도 머물러 보지 않은 것처럼. 그럴 때 수많은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두 가지 경로에 따라 수많은 변곡점이 생길 것이다. 어차피 걷기에 우린 어떤 식으로든 마주치게 된다.

 

 

 

지출내역

 

내용

금액

황태콩나물국밥

5.000

간식

3.000

일일 총합

8.000

총 지출

60.500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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