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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29. 잘 수 있는 배려를 뿌리친 이의 최후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29. 잘 수 있는 배려를 뿌리친 이의 최후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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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수 있는 배려를 뿌리친 이의 최후

 

 

4시쯤 교회가 보였다. 잘 곳을 정하기엔 이른 시간이긴 했지만, 한 번 의사를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들어갔다.

 

 

 

처음 허락받은 교회에 만족 못하다

 

젊은 목사님이 계셔서 물어봤더니, “좀 추울낀데...”라고 하실 뿐 거절하시진 않았다. 여느 때처럼 난 그저 자게 해주신다면 감사하다고 말했다. 결국 교회에서 자는 걸 승낙받긴 했는데 예배당에 안내만 해주셨을 뿐, 사택으로 가시더니 감감 무소식이다. 어디서 씻어야 하고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 물어보려 했는데 오시질 않는다. 교회 옆에 사택은 있긴 하지만, 방 한 칸 있는 신혼집이라 목사님을 또 불러 귀찮게 할 수는 없어서 무작정 기다렸다. 50분 정도 기다렸지만 오실 것 같지 않더라. 썰렁한 교회 의자에 혼자 앉아 있는 기분이란 망망대해에 혼자 놓인 기분과 같다고나 할까.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 가고 한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누군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고민했다던데, 떠나냐, 마냐를 고민하고 있다. 이미 5시 정도 되었고 근처엔 마을도 거의 없는 시골길이기에 막상 길을 나선다 해도 교회가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여기에 계속 있자니, 왠지 모르게 꺼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국토종단 때 연기군 양화면에서의 경험을 통해 한 번 정해진 숙소는 옮기지 않는 게 상책이란 걸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갈등이 심했다. 한참 걸은 후라 몸은 녹초가 되었고 맘은 처량한데 방치되다시피 하여 쉬지도 못하고 있으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더 좋은 잠자리가 구해진다는 보장도 없고 아예 잘 곳을 못 구할 가능성도 있으니 섣불리 나설 수도 없었다.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이미 몸은 가방을 싸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더라. 몸이 맘보다 먼저 반응한 것이다. 보통 몸은 보수적이고 맘은 진보적이라고 하던데, 이 경우 상식과 정반대였다. 때론 몸이 맘보다 더 진보적일 때가 있다. 그건 몸이 어떤 본능적 요구에 충실할 때일 것이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걸어 문을 나가고 있다. 죄를 지은 것 같은 모양새다. 그렇다고 미안해하진 않으련다. 목사님도 오히려 이런 상황을 바라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을회관에선 불청객 취급을 당하다

 

해가 저물어가는 거리는 싸늘했다. 두렵기도 하고 마음은 급하니 최대한 서둘렀다. 기존 걸음의 1.5배 속도로 걸었다. 언덕을 오르니 교회는 안 보이고 집 몇 채만 보인다. 완전히 낭패다. 저 멀리 무언가 희끗희끗한 게 보이는 것도 같다.

전속력으로 걸어가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그러나 교회는 보이지 않는다. 마을의 끝부분에 운 좋게도 마을회관이 있다. 왠지 살 방법을 찾은 마냥 맘이 놓이더라.

마을회관 문을 여니 공주 경천리 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더라. 나를 주목하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목소리 높여 자게 해달라고 이야기 했다. 그랬더니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거부하시더라. 밤새도록 여기서 노신다며 그리 할 수 없단다. 옆 마을에도 마을회관이 있으니 그리로 가보란다.

어둠이 내린 거리를 다시 걸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까지 했다. 옆 마을에 마을회관이 있다 해도 여기와 다르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낭패감에 빠져 온갖 최악의 상황이 떠올리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밤새도록 걷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낙엽 긁어모아서 그걸로 보온하며 야외에서 자야 하려나라는 생각까지 했겠는가. 그 순간 당연히 아까 전의 대책 없는 행동이 후회됐다. 뭐 하러 교회에서 나와서 이런 고생인지.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후회한들 무엇하랴.

 

 

 

살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절에 들어가다

 

한참 가고 있으니 세상에나 길가에 절이 있는 게 아닌가. 이런 경우는 처음이어서 들어갈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결국 맘 다잡고 들어가니 가정집 같이 생긴 곳이 나온다. 그곳에 대고 저기요라고 소리치니, 승복을 입은 분이 나온다.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방 안에 들어가 누구에게 그걸 전해주는 거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는지 여관비를 줄 테니 여관에 가서 자세요라고 하신다. 그래서 사람이 만나고 싶어 여행하는 거여서 이런 식으로 신세를 지며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거예요.”라며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다시 안에 계신 분과 옥신각신하시더니 결국 승낙을 받아내셨다. 이로써 나는 될 뻔하다가 거의 땅바닥에 추락하여 부딪히려던 찰나 비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론 교회에서 나온 건 잘한 선택이었다. 여긴 모든 여건이 훨씬 좋았고 스님과 보살님도 따뜻하게 맞이해주셨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기회도 찾아온다는 뻔한 결말을 맺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 절은 산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세상에 도로 바로 옆에 절이 있다. 나에겐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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