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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28.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인연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28. 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인연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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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길 위에서 만난 인연

 

 

국토종단을 할 땐 고창, 정읍, 고성에서 도보여행자와 마주쳤다. 그 경우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하게도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으면 아무래도 마주칠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배낭을 메고 걷는 걸음의 속도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앞서 가던 사람이 오랜 시간 휴식하지 않는 이상 스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상식이 깨지고 말았다. 운문저수지를 오르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자꾸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설마 내가 잘못 들었겠지하는 마음에 다시 집중하며 들어보니 역시나 들린다. 거긴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니었기에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여행자를 갈취하는 현대판 산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우락부락한 산적은커녕 배낭을 메고 낑낑대며 오는 꽃미남이 보일 뿐이었다. 도보여행자를 이런 식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기에, 한갓진 곳에서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누가 뭐랄 새도 없이 다짜고짜 인사부터 했다. 그쪽도 반가운 마음에 길을 건너 내가 있는 쪽으로 오더라. 그래서 그 사람이 경산 쪽으로 방향을 틀기 전까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 청도엔 소싸움도 유명한가 보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던 홍보물을 찍었다.

 

 

 

사람여행: 탄탄대로에서 협로로

 

그 친구는 23살이고 울산과학대에 다니다가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찾기 위해서 길을 나섰단다. 선배들을 보니 대학교를 졸업하면 대기업에 많이 취직되어 떵떵거리며 살 수 있긴 한데, 그게 과연 행복한 삶인지 의심이 들었다고 한다. 순탄한 인생,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이 준비되어 있는데 거기서 빠져나올 때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의 행복운운하며 무언가를 찾고자 한다는 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내가 저 나이 땐 저런 과감한 행동을 해보지도 못했고 삶에 대해 고민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떤 연유로 그런 고민을 하게 됐고, 왜 하필이면 도보여행을 택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길에서 만난 인연은 흘러가는 인연인 까닭에 깊은 내막까지 물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럴 땐 현재 도움이 될 이야기를 나누는 게 더 유용하다.

그 친구는 첫 여행인데도 텐트와 밥을 해먹을 수 있는 도구들을 준비해서 여행다운 여행을 하고 있더라. 맘먹는 순간 떠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렇게 완벽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건 더욱 대단해 보였다. 울산에서 시작했고 서울 자기 집까지 가는 것이란다.

 

 

▲ 운문호 코스는 정말 걸을 맛이 나는 코스였다. 바로 옆에 운문호를 끼고 길은 이어진다.

 

 

사람여행: 도보여행이냐? 고난의 행군이냐?

 

그런데 그 친구는 초심을 잃고 하루라도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 힘겹게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왜 걸으려 했는지는 잊은 채,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보며 감상할 여유도 없이 내달리다시피 걷기만 했던 것이다.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와 같이 고난의 행군을 하니, 여행의 즐거움은 온데간데없고 괴롭기만 했단다. 그래서 내가 얘기해준 건, 딴 게 아니고 오늘을 살라(Carpe Diem)’ 그 한 마디였다. 지금을 즐길 수 있을 때,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도 들린다고 말이다. 하루에 걸을 수 있는 양을 최대한 줄이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여행하라고 이야기해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해주었던 말은 결국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국토종단 때 내 모습은 딱 그 친구의 모습이었다. 빨리 끝내기 위해 걸었을 뿐 재미도 찾지 못했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사람여행을 하면서는 그런 부분을 고치려 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나야말로 사람여행이 관성화, 형식화 되지 않았는가?’라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나도 이 여행에 대한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초심을 다시 돌아봐야 했다.

그 친구와 얘기를 하며 걸은 시간은 3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솟았고, 걷는 내내 즐거웠다. 더욱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이니, 우리의 짧은 만남은 긴 여운을 남긴 만남이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 친구는 지금부터는 이 여행 자체를 맘껏 즐겨봐야겠어요.”라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텐트는 집에 보내고 여행하며 사람과 부딪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겠다는 다부진 각오까지 밝혔다. 길에서 만난 사이이기에 통성명을 하진 않았지만 공감대가 있어서 유쾌한 시간이었다.

 

 

▲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 그게 좋았다.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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