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삼사면에서 두 사람을 만나다
장로님이 교회에서 자겠다는 나를 데리고 청년을 소개해주겠다며 데려갔다. 청년에게 한참을 얘기했고 그 청년은 장로님의 말씀은 잘 듣는지 바로 승낙하여 그곳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교회에 묵겠다는 사람을 자신이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묵을 수 있게 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한 교회에서 매몰차게 거부당한 후이고, 어둠까지 짙게 깔린 후였기에 매우 행복했다.
사람여행⑥: 집사가 되기 위해 사는 삶
형은 사십대 중반쯤 되시는데, 뭔가가 좀 부족해보였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집에서 홀로 살고 있다. 집은 흉가를 방불케 했다. 집을 꾸밀 능력이 없으니, 부모님이 남겨주신 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다. 일을 하지는 않는 것 같고, 집사가 되기 위해 성경공부만 하시는 것 같았다. 주위의 사람들이 먹을 것도 주고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 같더라.
형과 이야기하며 이런저런 상황을 알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형의 말은 빠르기도 했지만 발음도 부정확해서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형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잔뜩 긴장하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오히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는데, 형은 자꾸 무슨 이야기든 하려고 하더라. 모처럼 이야기할 사람이 왔으니 신나서 그러시는 거겠지.
그 덕에 여행기도 쓰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에 신경을 써야 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라곤 ‘김또깡’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은 『야인시대』의 팬이어서 그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저녁에 잘 때, 형은 케이블 TV에서 『야인시대』가 하길 기다리다가 다 보고 잤다.
사람여행⑦: 크루즈 여행에 설레는 집사님과의 만남
형을 따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저녁으로 라면을 먹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라면을 사러 슈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때 같이 내려가시는 교인분께서 갑자기 말을 거시는 거다. 그래서 여행 중에 이곳에 왔고 형 집에서 자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저녁을 먹었냐고 물으시며 먹지 않았다면 따라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형과 함께 집사님 집으로 갔다. 집사님은 라면을 맛있게 끓여주셨다. 그리고 따다 놓은 미역까지 주시며 초장에 찍어 먹으라고 주셨다.
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사님은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셨더라. 그나마 지금은 자식들이 다 제 몫을 하기 때문에 한결 여유 있어 보였다. 얼마 있으면 자식들과 함께 부산 크루즈 여행을 가게 된단다. 그 말 속엔 초등학생이 소풍을 기다리는 것 같은 ‘기대감’, ‘설렘’이 들어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머님이 떠올랐다. 난 아직 내 몫도 못하고 있는데, 참 송구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나도 언젠가 내 몫을 하며 여행도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은 바다 내음이 물씬 맡아지는 곳에서 잠을 잔다. 바닷가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이색체험이 절로 행복하게 만든다. 잠은 생각 이상으로 푹 잘 수 있겠는데 사람과 같이 잔다는 것은 이래저래 불편한 일이긴 하더라. 하긴 이 형이야말로 갑작스레 불청객을 받아들여 잠을 자야 하니, 그것도 자신이 초대한 사람이 아닌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같이 자야 하니 더 힘들었을 테지만 말이다. (21:50)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맥주+식빵 |
4.000원 |
일일 총합 |
4.000원 |
총 지출 |
44.5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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