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40. 비 오는 아침인데도 바다길을 따라 가다[영덕 삼사면⇒ 영덕 창수면](11.04.07.목)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40. 비 오는 아침인데도 바다길을 따라 가다[영덕 삼사면⇒ 영덕 창수면](11.04.07.목)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22:48
728x90
반응형

비 오는 아침인데도 바다길을 따라 가다

 

 

방사능비가 내린다던 날이다.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이미 비가 온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제 걸으면서 내일은 비가 온다는데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침에 비 오는 양을 봐서 하루 더 묵던지, 오후까지 쉬다가 영덕까지만 가던지 해야겠다고 정한 것이다. 하루 더 묵으려면 당연히 좋은 목회자를 만나야 한다. 과연 부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국토종단 때는 비 오는 날 걷는 게 제일 좋았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피할 궁리만 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랄까? 방사능비라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앞서기 때문이랄까?

 

 

▲ 영덕 삼사면⇒ 영덕 창수면

 

 

작심(作心) 하루

 

하루 더 머물던지, 비 그친 다음에 영덕까지 가던지 해야지라고 맘먹은 지 하루 만에 계획을 파기해야 했다. ‘작심삼일도 비난받기 일쑤인데 작심하루라니, 이건 욕먹어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여행이란 계획과 늘 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작심하루, 그건 무계획 여행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어젯밤 일찍 자고 싶었는데 형님은 야인시대를 보겠다며 안 자더라. 누군가와 함께 잔다는 것도, TV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며 잔다는 것도 나에겐 고문이었다. 뒤척거리다 겨우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는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나서 출발하면 좋겠지만, 그때까지 있으면 형님도 나도 서로 불편할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런 불편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비를 맞으며 걷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씻자마자 아침도 먹지 않고 도망치듯 나왔다. 아직까지도 사람을 가리는 나의 습성이 반영된 탓이지만, 어쨌든 여행 중엔 누가 뭐래도 편한 게 제일이다.

 

 

▲ 작심하루, 빗 속 길을 걷다.

 

 

 

빗속의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걷는다. 가는 길에 저녁밥을 주셨던 집사님 댁에 들러서 인사를 드렸다. 좋은 여행하라며 배웅까지 해주신다.

해안도로는 지도에 나와 있는 길이 아니었기에 불안했다. 자칫 잘못하면 헛걸음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앞을 지나가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보니, 이 길로 가도 영덕까지 갈 수 있단다. 그제야 맘이 놓였다.

아이들은 우의를 입고 큰 가방을 메고 가는 내가 신기한지, 날 바짝 붙어 따라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이들과 함께 걸었다. 우산 쓰고 책가방 메고 가는 아이들과 우의 입고 배낭 메고 가는 나, 왠지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듯 묘한 무언가가 있다. 어색한 어울림의 향연.

동해를 보며 가는 길은 운치가 있더라. 거기에 비까지 오니 분위기는 최고였다. 쓸쓸한 듯, 시원한 듯, 처량한 듯, 심심한 듯, 온 세상이 내 것인 듯, 나 홀로 남은 듯. 온갖 감정이 파도를 따라 오간다. 누군 강에 가서 외치라고 했다는데[각주:1] 나는 강으로도 부족하여 바다에 와서 외치고 있다. “나는 어드메쯤 가고 있는 거냐?”

 

 

▲ 온갖 감정이 파도를 친다. 이게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인용

목차

사진

 
  1.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 얼마나 괴로운지 /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 심장의 벌레에 대해 / 옷장의 나방에 대해 /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 터지는 복장에 대해 /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 치사함에 대해 /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 당신이 직접 /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 강가에서는 우리 /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강」, 황인숙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