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목사님과의 만남
열심히 걸어 교회에 도착해 주위를 살폈다. 교회문은 열려 있고 교회 바로 옆엔 목사님 사택이 있다. 하지만 목사님은 사택에 계시지 않나 보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공허함만 감도니 말이다.
그래서 교회 근처를 둘러보고 있는데 목사님 같은 분이 나오시더라. 다짜고짜 인사부터 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했다. 이럴 때일수록 부드러운 듯 힘 있게, 그러면서도 건방져 보이지 않게 이야기하는 게 핵심이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목사님은 교회 사정이 좋지 않아 숙박시설이 있는 인근 교회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신다. 거부하는 게 아니었기에 왠지 잘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불편해도 좋으니 여기서 자게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목사님도 결국은 승낙해주시더라.
사람여행⑧: 민물고기 매운탕 저녁식사에 초대 받다
한종식 목사님은 목사님 특유의 제스처나 말투가 없는 편안한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셨다. 신학교에서 그런 식으로 교육받지 않았을 것임에도 목사님들의 설교 말투는 거의 비슷비슷하다. 중저음의 거룩하게 들리는 말투라고 해야 하나. 얼핏 듣기엔 좋은 말투임에도 분명 자주 들으면 왠지 가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형적인 말투가 아니어서 오히려 맘에 들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쉽게 친해질 수 있었던 데엔 목사님의 친화력이 한몫 했다. 교회 창고에서 자야 한다며, 이것저것 깔아주시고 빨래도 말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귀찮게 이것저것 부탁을 했지만, 싫은 내색 없이 다 들어주셨다.
한 끼도 못 먹어 배가 고팠는데 목사님은 이웃 교회에서 매운탕 파티를 한다며 나도 데리고 가셨다. 이게 웬 횡재인가^^ 가는 길에 ‘해맞이 공원’을 구경시켜주려 하셨는데, 음식이 거의 다 되었다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 바로 교회로 가야 했다. 해맞이 공원에 갔으면 풍력발전단지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부엌에서 매운탕을 준비하는 동안, 몇몇 분은 탁구를 치고 있었다. 그 자리엔 이웃교회 목사님들과 집사님들이 모였다. 이런 자리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과연 잠이나 잘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자게 됨은 물론 먹을 것을 앞에 두고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이래서 ‘사람일은 알 수 없다’고 하나 보다.
민물고기 매운탕과 각종 야채, 거기에 한가득 담긴 밥까지,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뼈를 골라내고 먹는 분도 계셨지만 난 허기진 탓에 뼈까지 꼭꼭 씹어 먹었다. 주린 배를 최고급 음식으로 꽉꽉 채울 수 있어 행복했고 뜻밖의 인연들과 어울릴 수 있어 즐거웠다.
사람여행⑧: 자유로운 영혼
목사님은 특이하게도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feel)’이 났다. 실제로 마음이 동하면 제주도에도 갔다가 중국에도 갔다가 하신단다.
그런 기풍 때문인지 이런 여행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셨다.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여러 사건을 겪어보면 더 넓게 세상을 보게 되고 어떤 일이든 호들갑스럽지 않게 처리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신 것이다. 여행을 통해 사람의 배포가 커지며, 전체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에 눈앞의 일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그 말에 백번 동의했다. 어떤 경험이든 삶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나쁜 경험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험은 삶의 자양분이다. 그 당시엔 안 좋은 경험일지라도 시간을 보내고 묵히고 묵히면 곰삭으며 깨달음을 준다. 그래서 많은 아픔을 겪어내며, 슬픔을 맛들이며 지내온 삶은 더욱 깊이 있는 인생을 살게 한다. 그런 사람과 만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운을 듬뿍 받는 것 같다. 그게 바로 축복받은 인연이라 할 수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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