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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62. 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영월⇒단양 가곡](11.04.13.수)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62. 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영월⇒단양 가곡](11.04.13.수)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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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

 

 

방이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면서 잤다. 벽에 온도조절기 같은 게 붙어 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스위치가 안 보인다. 아마도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통제하나 보다. 이불 반쪽을 깔고 반쪽을 덮고 자야 하니,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잘 수밖에 없었다. 몸이 오므라드는 느낌마저 든다. 그나마 새벽이 되어 보일러가 켜져서 다행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오늘 여행을 망칠 뻔했다. 보일러가 켜져 바닥이 따끈해지고 나서야 푹 잘 수 있었다. 꿈까지 꾸며 말이다.

 

 

▲ 영월 ⇒ 단양 가곡

 

 

 

, 의식으로 눌러버린 진실의 한 단면

 

그때 꾼 꿈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아침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에 맞춰 버스가 왔으나 정류장에 다 와서 엔진 과열로 멈춘 것이다. 신속하게 상황이 처리되어 다른 버스가 왔고 멈춘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옮겨 타기 시작했다. 물론 공짜로 타는 거였다. 나도 그 인파에 끼어 탔는데, 그 순간 돈을 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탔다. 하지만 기사님은 몇 명이 옮겨 타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듯이, “한 사람이 돈 안 내고 그냥 탔는데, 누구야!”라고 소리치신 것이다.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은 학과 선후배들로 다 아는 사이였다. 그런 상황이니 당연히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돈도 안 내고 탄 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내가 조용한 편이니 몰라보겠지’ ‘그냥 지금이라도 자수할까?’하는 갖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자백할 타이밍을 고민만 거듭하다가 놓쳤고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내릴 때 아저씨가 뭐라고 하면 어쩌지 했는데, 다행히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식은땀이 흐르던 순간도 그렇게 끝나가는 듯했다.

이렇게만 끝났으면 이 꿈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꿈은 마치 영화인 것처럼 뒷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동기에게 버스회사에서 편지가 온 것이다. ‘CCTV 판독 결과 당신이 무임승차한 범인으로 판정되었기에 증오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난 그걸 보는 순간 쾌재를 외쳤다. 어쨌든 포위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순간 억울하게 누명을 쓴 동기에 대한 미안함은 하나도 없었다.

이 꿈은 내 안으로 움츠러든 표독함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리라. 그런데 그 녀석이 담담히 받아들였으면 좋으련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결국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은 채 상황만 더 극단적으로 흘러갔다. 그렇다고 나서서 자백할 만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눈치만 살피다가 꿈을 깼다

 

 

▲ 굳이 프로이트를 들먹이지 않아도, 사람의 행동은 의식보다 무의식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어찌 보면 무의식이 진짜 의식인지도 모른다.

 

 

 

약한 모습, 나쁜 모습을 받아들여 합신불(合身佛)’이 될 수 있나?

 

이 꿈엔 내가 억압해두려 했던 나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상황일 때 자신의 신념을 지키거나, 착한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아한 척을 해도 걸릴 만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릴 때, 내가 모든 책임을 다 짊어져야 할 때는 말이 다르다. 그땐 사람의 본능이 나오게 마련이다. 과연 그럴 때조차도 난 착한 사람이며,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일 수 있을까? 이 꿈을 통해 보더라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도 약한 존재이면서도 나보다 약한 사람을 못 살게 하기도 했고, 거만한 모습으로 너스레 떨기도 했으며,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선 도망치려 하기에 바빴다. 어릴 때의 나는 세상을 맞서기보다 도망가며, 회피하고 남에게 덤터기 씌우려고만 했었다. 내가 뭔가를 책임진다는 게 손해를 보는 것으로만 느껴져 감당하려 하지 않은 것이다.

그게 지금이라고 해서 나아진 건 거의 없다. 단지 지금은 의식이 좀 성장한 탓에 교묘하게 그런 밑바닥의 마음들을 단속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난 착한 사람이다, ‘난 남을 위하는 사람이라고 셀프 세뇌를 했을 뿐이다.

 

 

▲ 다중 정체감. 자신의 가장 은폐된 부분을 껴 안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걸 나 자신의 모습이라 인정할 수 있는가?

 

 

이 꿈을 꾸면서 보니, 난 여전히 똑같았다. 무언가 책임을 질 만한 마음가짐도, 맞설만한 용기도, 누군가 당한 것에 대해 부조리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나만 아니면 되었고, 어떻게든 도망치기만 하면 되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나라는 사람보다 내 실체는 더 형편없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 꿈을 꾸며 여실히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안 좋은 모습을 저주하며, 나 자신을 증오하며 살아야하는 것일까? 전혀 그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안 좋은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임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걸 감싸 안으며 나아가야 하는 걸 테다. 이상 속의 나를 나인 양 착각하지 말고, 비열하고 추잡한 나 자신을 받아들여 좀 더 나를 이해해야 한다. 난 여태껏 나 자신을 너무 모르고 살았다.

 

 

▲ 영월 동강에 떠오른 해를 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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