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사람을 왕따시키는 세상아!
단양으로 경로를 바꾸길 정말 잘했다. 차량통행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이라 신나게 걸을 수 있었다. 날씨도 어찌나 화창한지 이런 날 집에 있거나, 사무실에 박혀 있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자본의 하수인
일이라는 거, 당연히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건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자아실현과 자본증식과 인정욕 등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한다는 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당연히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뜻대로 되지 않아 쉼표처럼 여행을 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당연함에 의문을 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은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이다.
시골생활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접하면서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생계를 위한 노동 네 시간, 지적 활동 네 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하며 보내는 시간 네 시간이면 완벽한 하루가 된다. 생계를 위한 노동은 신분상 깨끗한 손과 말끔한 옷, 현실세계에 대한 상아탑적 무관심에 젖어 있는 교사에게서 기생생활의 때를 벗겨준다.
-스콧니어링, 『스콧니어링 자서전』, 김라합 옮김, 실천문학사, 2000, 375쪽
왜 그는 일에 치이거나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판했을까? 그건 그런 사람들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하기 위해 먹고, 일하기 위해 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고단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치열하게 일을 하는지, 왜 그토록 악착같이 돈을 벌려고 하는지 되묻고 있었던 것이다.
뭐 각자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말들은 많겠지만, 과연 정말로 그 대답으로 자기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일에 치이지 않고 즐기며 살 순 없는지, 돈을 조금 벌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순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교수직을 그만둔 뒤의 회고) 부를 피하지 않고 되레 그것을 추구했더라면 나는 분명 안이한 삶에 말려들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명은 사회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나는 존 러스킨의 금광업자 같은 종말을 맞았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금을 가지고 돌아가는 금광업자는 육로로 여행을 하면 강도를 만날까 두려워, 바다를 통해 동부로 가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배가 해안에서 멀어졌을 때 폭풍이 인다. 금광업자는 가지고 있던 금을 띠를 이용해 허리에 두른다. 배가 가라앉는다. 금광업자는 묵직한 허리띠를 찬 채 배에서 뛰어내린다. 러스킨은 묻는다. “금덩이의 무게에 눌려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있으니, 그가 금을 소유한 것인가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인가?”
-스콧니어링, 『스콧니어링 자서전』, 김라합 옮김, 실천문학사, 2000, 126쪽
돈이 많은 게 나쁜 건 아니다. 그리고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게 나쁜 것도 아니다. 단지 돈이 주체가 되어 내가 부림을 받는 게 문제일 뿐이다. 위에 나오는 금광업자는 자본의 증식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고 만다. 그는 돈을 운반하고 돈을 증식하는 것에만 모든 걸 다 바친 충실한 자본의 하수인일 뿐이다. 돈은 사람의 소유물임에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돈의 소유물이 되고야 만 것이다.
돈이 왕따 시키지 않는 세상의 꿈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자본주의의 사회에 사는 이상, 자본의 증식 욕망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자본 앞에서는 사용자든 노동자든 자본의 노예일 뿐이다. 그러나 그중에서 더욱 비참한 건 노동자들이다. 한진중공업 사태는 바로 이와 같은 현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85호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 님이 쓴 『소금꽃나무』을 보자.
난 아직도 세상을 바꾸고 싶다. 인간이 돈에 왕따 당하는 이 지리멸렬의 세상은 바뀌어야 한다. 이 땅 이 강산 공장마다, 사무실마다 울울창창 흐드러지게 소금꽃을 피우며 서 있는 나무들.
열심히 소금꽃을 피워가며 일했는데 사용자들에 의해 ‘돈에 왕따 당하’게 되었다. 한진중공업 사태의 본질은 자본이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고, 사회 전체가 그런 구조로 재편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나고 돈 났음에도 돈 나고 사람 난 듯한 세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돈의 소유물이 된 세상이기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며, 연대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자본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해방하기 위해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나서는 것이다.
이와 같은 마음들이 모여 함께 토론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만 있다면, 분명히 스콧 니어링이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일과 삶과 앎이 하나 된 세상을 꿈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걸으며 돈이 사람을 왕따 시키지 않는 세상을 꿈꿔본다.
한진중공업 다닐 때,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는 아시겠지요?
인용
'연재 > 여행 속에 답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년 사람여행 - 66. 가곡교회 목사님과의 맛난 대화와 아쉬운 작별[단양 가곡⇒제천 수산](11.04.14.목) (0) | 2021.02.17 |
---|---|
2011년 사람여행 - 65.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0) | 2021.02.16 |
2011년 사람여행 - 63. Young World, 영월의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다 (0) | 2021.02.16 |
2011년 사람여행 - 62. 꿈을 통해 나 자신을 엿보다[영월⇒단양 가곡](11.04.13.수) (0) | 2021.02.16 |
2011년 사람여행 - 61. 영월 KBS 방송국을 굳이 찾아간 이유 (0) | 2021.0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