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오지 말거라
시간이 겨우 오전밖에 되지 않았기에 단양에서 잠자리를 구하는 건 무리가 있었다. 물론 애초부터 이곳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다면 여관을 미리 잡고 남한강의 고적(孤寂)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테지만, 그럴 생각이 아니었기에 수산면까지 가려 맘먹었다.
맘이 바뀌니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해지다
먼 거리이고 산등성이를 넘어야 하는 길이기에 속력을 높여야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몸이 정말 무거웠다. 이런 컨디션으로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경치는 정말 빼어났다. 남한강을 따라 걸으니, 어디를 보든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오전과는 달리 맘이 급해지니 산등성이에 건설된 구불구불한 도로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 구불구불한 길에선 아무래도 차가 오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천천히 이 길을 걸어간다면 나도 최대한 조심하며 걷는 것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지금은 가야 할 길이 멀기에 전속력으로 가고 있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차가 내려오다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시 마음의 변화에 따라 같은 환경도 느껴지는 게 이토록 다르다.
이때부턴 자연을 느긋이 관람할 여유도 없이 잔뜩 긴장하며 걸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산등성이를 오르는 길이라 힘이 배로 드는데, 내려오는 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 수시로 길을 건너가며 올라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지 마라
수산면에 도착하니 6시가 약간 넘었다. 잘 곳만 바로 구해지면 여행기도 정리하고 어제 12시가 넘도록 목사님과 맛난 대화를 하느라 못 잔 잠까지 원 없이 자야지. 이곳은 마을 규모가 꽤 컸다. 교회도 무려 두 군데나 보인다. 두 개의 십자가를 보는 순간 ‘이제는 살았구나’하는 외마디 외침이 절로 나왔다.
처음 찾아간 교회는 마을 모습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거창하게 지어진 교회였다. 이렇게 큰 교회라면 내 한 몸 누일 곳 정도는 있겠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보무당당(步武堂堂)하게 다른 곳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 교회로 바로 향했다. 근데 문 앞에 다다르자 할 말을 잊었다.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듯 문엔 온갖 잠금장치들이 징그럽게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을 구원하기 위해 속세로 내려왔지만 오히려 산속에 있는 절보다 더 깊은 심리적 거리감을 느꼈다. 이게 바로 교회의 현주소인가.
이런 현실을 보니 어제 잤던 가곡교회가 한층 대단해보이더라. 아침밥을 먹고 나올 때, 사모님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더니,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마음 놓고 들려요”라고 말씀하셨고 정말 그렇게 열린 마음으로 지나가는 불청객을 대해줬으니 말이다. 목사님의 열린 마음만큼이나 사모님의 따뜻한 마음도 내겐 감동이었다.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만 오도록 하는 교회와 누구든 올 수 있는 교회, 어느 교회가 진정 하느님이 원하시는 교회일까.
교회 어디를 찾아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6시가 넘었으니, 사무실에 근무하던 사람들도 다 퇴근했겠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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