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워준 사람에 대한 네 가지 원칙
목사님의 성함은 이신웅이다. 사모님은 나보다 어려 보였고 아들인 주헌이는 총명해 보였다. 또랑또랑한 눈망울이 참 예쁘더라.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얼른 장가가고 싶더라.
사람여행⑰: 재림교회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다
목사님은 목회자 모임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나를 사택으로 초대했다. 신혼집에 함부로 들어가도 되나 스스로 민망할 정도였는데, 오히려 목사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신가 보다. 사모님이 라면을 끓여줘서 그걸 먹으며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재림교회에선 결혼할 대상을 정해주는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아마 통일교와 체계가 비슷하다고 느꼈기에 그런 질문을 한 듯하다. 목사님은 정해주지 않으며 자신이 맘에 맞는 사람을 찾아 결혼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화요일이나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등 일반인과는 다른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같은 재림교인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단다. 재림교회의 목사님이 되려면 삼육대학교의 신학대학을 나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목사님과의 대화시간은 유쾌했다. 자신만의 교리로 꽉 막히지도 않았고, 순간순간 난처할 만한 것을 물어도 성심껏 대답해 주셨기 때문이다. 젊기 때문인지, 아니면 재림교회가 생각하는 것만큼 보수적이지 않기 때문인지 대화가 잘 통했다. 봉화교회의 김윤상 목사님이나 괴산교회의 이신웅 목사님을 만나보니 제칠일안식교에 대한 이미지도 훨씬 좋아졌다. 내가 재림교인이건 아니건 정말 소중한 인연들이다.
내가 자야 할 곳은 교육관이었는데, 여긴 판넬도 깔려 있고 목사님이 두꺼운 이불까지 챙겨주셔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배도 든든하고 방도 아늑하고 주위는 조용하고 최고의 순간이다.
네 가지 원칙
잠자는 일은 누군가에게 신세 지는 일이기에 최대한 신경 써야 한다. 인심을 써준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도록, 괜히 자게 해줬다는 인상을 갖지 않도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이 원칙은 나만의 원칙이기에, 각자의 생각과 상황에 맞게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첫째, ‘빈집 신조’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빈집』을 보고서 이런 신조를 생각해 냈다. 이름하야 ‘머문 흔적 지우기’ 되시겠다. 흔히 누군가 들어온 뒤 문을 안 닫으면 “누구 꼬리가 이렇게 길어~”하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바로 ‘빈집 신조’는 ‘꼬리 자르기’와 같은 개념이다. 머물다 떠난 장소에 머문 흔적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건 여관이라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완벽하게 흔적을 지울 순 없겠지만 최대한 머물기 전의 상태와 유사하게 정리정돈하고 나오는 것이다. 흔한 말로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다’고 하는 말처럼 말이다(난 아름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관리할 수 있다면 어디를 가든, 누굴 만나든 나쁜 인상을 남기진 않을 것이다.
둘째, ‘밀착하기’다. 신세를 지는데 나로 인해 분위기가 삭막해져서야 되겠는가. 방에 가만히 있으면 분위기가 썰렁해지기 십상이다. 아예 말을 붙여주지 않거나 나에게 관심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첫 만남이며 우연한 만남이기에 어색할 것은 뻔하지만,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금세 친해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될 때 사람도 사귀고 이야기도 들으며 여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만약 밀착할 자신이 없다면, 찜질방이나 여관에 갈 일이다.
셋째, ‘제 시간에 떠나기’이다. 갑자기 부탁을 들어준 입장에선 아침에 언제 갈지 걱정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난 ‘7시에 일어나 아무리 늦어도 8시 전엔 떠나기’로 정했다. 물론 애초에 이렇게 정한 건 아니지만, 여행을 하다 보니 이 정도면 피로도 풀리고 걱정도 안 끼쳐드릴 것 같아 정한 것이다. 이게 바로 날 자게 해준 분에 대한 예의이고 나의 여행에 대한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넷째, ‘해야 할 몫 하기’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받은 만큼 다른 누군가에게 갚아야 한다. 그렇기에 호의를 받고 이것저것 챙겨줄 때 당연한 몫이려니 하고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 그런 무례함은 언젠가 고스란히 자기에게 되돌아오기 때문에 설거지를 하든, 다른 일을 같이 하든, 함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든 해야 한다. 내가 먼저 대접받으려 하기 전에, 먼저 대접하고 함께 어울릴 일이다.
여행은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선 책임이나 원칙도 필요한 법이다. 나의 자유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 그건 자유라기보다 착취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이다. 착취가 아닌 자유를 같이 만끽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피치 못할 원칙이 필요한 것이다. 위의 원칙도 바로 그와 같은 고민에서 세우게 되었다. 이런 원칙을 지키되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융통성 있게 행동할 수 있다면, 그만큼 자유로운 여행이 될 것이다. (19:40)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없음 |
0원 |
일일 총합 |
0원 |
총 지출 |
129.4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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