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교인에게서 본 신앙인의 모습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던 걸까. 이상하게도 자다깨다를 반복하면서 잤다. 여행이 3주째에 접어들면서 이 모든 게 일상이 된 느낌이다. 일상이 된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고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반일상(反日常)에 머무는 법
특별한 경험도 자주 반복되면 일상이 되기 일쑤다. 비행기 여행을 떠올려 보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땐 그것 자체가 삶의 단 한 번뿐인 이벤트이기에 엄청 긴장되고 설렌다. 그리고 그 경험은 두고두고 회상될 정도로 강인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게 연거푸 계속된다면, 그도 아니면 아예 해외출장을 늘 나가야 하는 일을 하게 된다면 그 감정은 무뎌지게 되어 있고 심지어는 그만하고 싶은 번거로운 일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도 벌써 사람여행이 번거로운 일이, 시작했기에 그만둘 수 없어 그저 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건 관성에 의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람여행을 계획하던 당시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리라. 누구나 한 번씩은 외쳐본 ‘처음처럼’이라는 말이 매우 적격한 표현이다. 맹목적으로 여행하지 말고 말랑말랑한 정신으로 모든 것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보자.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멋있어 보여야 한다는 자의식도 버리고 이 상황에 풍덩 빠져 들어보자. 그럴 때 일상은 반일상이 되고 늘 가슴 뭉클한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여행⑰: 재림교인의 모습에서 신앙인으로 모습을 보다
목사님은 아침을 먹자며 부르셨다. 그때 자연스레 종교 이야기가 오고 갔다. 재림교회는 주류 교회에 의해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나도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해본 적이 있기에 상종하면 안 되는 줄만 알았다. 좀 더 과격하게 이야기하면, ‘사람의 탈을 쓴 악마’라고 여기기까지 했다. 재림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재림교인을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 종교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막상 재림교인을 만나보니 상식을 지닌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 이야기를 할 땐 광신도처럼 자신의 견해만 우기지도 않았고 전도에 혈안이 되어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보수 기독교 교단의 사람들이 더욱 ‘이단스러’웠던 것이다. 내가 성경에 대해 아는 것이 적어 깊은 대화를 못 나눴을 뿐, 충분히 비판적인 토론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난 그들의 그런 열린 마음과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맘에 든다.
목사님은 가는 길을 배웅해주셨다. 주헌이와 목사님 내외분이 행복하길 바라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렇게 뿌듯한 기분으로 길을 나설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그만큼 목사님이 달콤한 휴식시간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들의 거처에 낯선 사람을 들어오도록 허락해주셨고 성심껏 대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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