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에 전북으로 복귀하다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한 달간의 대장정이었던 이 여행도 끝난다. 걷는 것도 좋았고 낯선 장소를 헤매는 것도 좋았다.
여행이 끝나면 좋은 점, 그리고 아쉬운 점
하지만 잠자리를 구하러 불안에 떨어야 하고 몹쓸 존재가 된 느낌으로 거부당해야 하는 건 싫었다. 초반엔 그런 것마저 태연히 넘길 수 있었는데 여행기간이 길어지고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심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 맘 속에 여유가 점점 없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행이 끝나가며 기쁜 한 가지 이유는 잠자리를 구하는 힘듦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편안한 내 방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자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게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딱 그만큼만이다. 그것 외엔 모든 게 아쉽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게, 더 많은 지역을 다녀보지 못한 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지 못한 게 아쉽다.
고민 없는 행동은 후회를 낳는다
국토종단을 다시 반복하고 싶어 이 길을 나선 건 아니었다. 그저 내 나라를 발로 걸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면, 재작년의 국토종단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때 해보지 못한 것들을 하고 싶었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만남,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등 여행의 모든 요소를 맛보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이번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고 떠난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에 접어든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았던 여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재작년 여행과 별반 다르지 않았고 나 또한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편한 것만을 찾아다녔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은 건 무작정 떠나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온갖 계획을 세세히 세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왜 떠나는지, 떠나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봤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것과 같은 의미로 ‘고민한 만큼 얻게 된다’는 것도 지금은 알 것 같다. 이번 여행을 떠나면서도 고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고민이 짧았다.
귀소본능, 그건 정말 본능일지도 모른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 만에 전북에 들어가는 날이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 다 애국자가 된다고 하던데, 나도 타지방만 돌아다니다 보니 ‘전라도인’이라는 ‘전북인’이라는 생각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더라. 오죽했으면 대형 화물차의 번호판에 ‘전북 XXXX’라고 쓰여 있어도 꼭 전주에 도착한 마냥 기뻐했을까.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까진 전주라는 도시에 대해서, 전북이라는 곳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당연하다. 일상이 되어 버리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 물을 이유가, 사유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이 멈춘 곳엔 오로지 관성과 일상이라는 답답함만이 자리한다.
그랬던 공간을 멀리서 바라보며 새롭게 사유할 수 있으니, 그제야 다른 면도 보이고 애정도 생기더라. 금강하구둑을 건너 전북 군산에 들어서던 순간의 감회는 지금도 생생하다. 고향이 주는 정서적 안정감 때문에 느즈막한 나이의 사람들이 귀향한다고 하던데, 그런 느낌이 그 순간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한 건 군산은 나와 아무 인연도 없다는 것이다. 내가 자란 곳도 아니고 추억이 있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귀향할 때의 느낌이 들었다면 오버한다고 생각할 테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미 같은 전북이라는 동질감이 있고 전북에서만 볼 수 있는 주황색 버스를 볼 수 있으며 선명하게 들리는 ‘장혜라의 행복발전소’를 듣는 순간 무언가 울컥하며 올라왔기 때문이다. 내가 여태껏 시달림 받았다곤 생각하지 않지만, 낯선 곳에서 심리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인 거 같다. 정작 익숙한 곳에 대한 반감으로 낯선 곳인 영남으로 떠난 것이지만, 그게 한 달 정도 계속 되니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친 나에게 전북으로의 복귀는 묘한 위로가 되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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