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사람여행, 안녕! 문화여행
지금 내가 걷는 길은 26번 국도길 ‘번영로(누굴 위한 번영인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한 길이다. 전주-군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면서 이 길은 거의 잊혀졌다.
번영로를 걸으며 역사를 생각하다
이 도로로 걷기 전에만 해도 2차선 도로이며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이 도로로 들어서니 시외버스도 많이 다니고 차량의 통행 대수도 많더라. 내 기대가 깨졌지만 이 길로 걷는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이 길은 역사적인 길이다. 일제시대 때 쌀 반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기획했던 도로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대해 시대상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아리랑』이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길가에 심어진 벚꽃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군산은 쌀을 실어내기 위한 부속무대다. 그런 가운데 신작로를 개설하고 전국 최초의 도로인 전군도로가 생겨났다. 쌀을 실어내기 위해 만든 끔찍한 도로이다. 즉 수탈의 도로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전군가도를 달리면서 눈물을 흘려야 한다. 수탈이 이뤄낸 피눈물 나는 도로이며, 일본인들이 일본을 상징하는 사쿠라 벚꽃을 심지 않았는가? 벚꽃축제를 단순히 축제로만 즐겨서는 안 된다.
예상치 못한, 그래서 허무한 끝
김제에 들어서니 빗방울이 굵어지고 또 낙뢰가 내리친다. 그럼에도 오늘 걸을 양이 많지 않고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기에 쉬지 않고 최선을 다해 걸었다. 백구면에 들어서니 낯익은 버스가 서 있더라. 그건 바로 전주 시내버스였다. ‘이런 곳까지 시내버스가 다닐 줄이야’라는 반가운 마음으로 버스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경유지를 훑고 있는데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이 있는 ‘흑석골’로 곧장 가는 버스가 아닌가. 전주 시내에선 이 버스를 보기가 그렇게 힘들더니 여기에 떡하니 있으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그런데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갈등에 빠지고 말았으니, 역시 여행은 우연의 연속임이 틀림없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집에 가는 버스를 보니 편하게 가고픈 마음이 생기더라. 굳이 ‘호남제일문’까지 걸어가야 할 이유도 없고, 낙뢰를 신경 쓰며 걸을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버스를 타고 편하게 왔다. 하지만 나의 합리화가 무색하게도 버스에 타고 얼마 지나지 않으니 비도 그치고 심지어 해까지 얼굴을 내밀더라. 이로써 나의 2011년 여행은 미완으로 끝났다. 막상 그렇게 끝내고 나니 찝찝한 마음도 들고 섭섭한 기분도 들었다.
사람여행은 이대로 끝나지만 다음엔 문화여행으로
하지만 언제고 다시 떠날 생각이 있기에 아쉬워하진 않으련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 길 위의 인생이 지닌 매력을 알려주었다. 두 번의 여행을 하면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야겠다. 이를 테면 ‘여행이 고행은 아니라는 것’을 알도록 다음엔 즐기는 방향으로 여행을 계획한다던지, ‘생소한 문화적 충격에 자신의 방어기제를 세우지 말고 당당히 받아들이는 것’을 하도록 지금까지의 여행기를 보여주며 얘기를 들려달라고 한다던지, ‘걷고 며칠 간 그 지역에 머물며 명소도 찾아다니고 토산물도 먹어 보는 것’을 하기 위해 한 장소에 오래 머물며 그 지역을 공부한다던지 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여행은 사람과 문화재와 음식이 버무려진 알찬 여행을 해보련다. 끝은 미지의 시작을 내포하고 있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시내버스비 |
2.000원 |
일일 총합 |
2.000원 |
총 여행비 |
239.4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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