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혁명
Agricultural Revolution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노예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문명이 생기기 이전에도 인간이 노예를 부렸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노예는 인류가 도시 문명을 일구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도시를 건설하게 된 것도 실은 노예 덕분이었다. 노예가 도시보다 먼저라니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그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노예를 인간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다. 노예의 사전적인 정의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남의 부림을 받는 사람”이지만, 더 넓게 인류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재산처럼 소유하는 다른 생물 종도 노예에 포함시킬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 사육하고 재배하는 동물과 식물도 모두 노예다. 인간이 최초로 식물을 노예화한 과정이 바로 농업혁명(農業革命)이다.
인간은 지구상에 등장한 뒤 수백만 년 동안 채집 - 수렵 생활을 했다. 자연적으로 자라는 식물을 채집하고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생활은 사실상 여느 동물들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만 5천~1만 년 전쯤에 인간은 최초로 자신이 식량으로 삼는 동식물의 생명 주기 전체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농업혁명인데 신석기시대가 시작될 무렵이었으므로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부른다.
동식물을 최초로 사육하기 시작한 곳은 오늘날 중동의 고원지대였다. 기후가 건조한 현재와 달리 이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풍부했기 때문에 별다른 관개(灌漑)를 하지 않고도 작물이 자랄 수 있었다. 각종 동식물의 원형이 많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밀, 귀리, 보리, 소, 양, 염소, 돼지 등이 이곳에서 최초로 인간에 의해 사육되었다.
처음으로 식물 재배에 착안한 인간은 아마 야생 밀이 매년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집단으로 자란다는 사실에 주목했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몇 알의 밀을 심고 자라나는 모습을 관찰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수확을 거두었을 때 그의 가슴은 얼마나 벅차올랐을까?
한 곳에서 정기적으로 많은 농작물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은 정착생활을 시작했고, 점차 그 주변에 다른 인간들이 모여들어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었다. 집을 지니고 살게 되면서 인간은 개와 소를 시작으로 동물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개는 집과 작물을 지키고 사냥을 도왔고 소는 큰 힘이 필요한 밭갈이에 유용했다.
농업혁명은 점차 다른 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여러 곳에서 독자적으로 현지 조건에 맞는 동식물의 사육과 재배가 이루어졌다. 소의 젖을 먹는다는 발상은 중동에서 처음 생겨났는데, 그 흔적은 오늘날 인류의 2/3에게 우유를 소화할 수 있는 락타아제(Laktase)라는 효소가 없다는 사실로 증명된다. 유럽인과 중동인은 우유를 소화할 수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대부분 락타아제가 없어 우유의 당분인 락토오스(lactose)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락타아제가 생겨난 것은 중동 사람들이 젖소의 우유를 식용하게 된 이후 유전자 돌연변이가 일어난 탓이다.
농업혁명으로 풍부한 식량을 정기적으로 확보한 덕분에 인간 사회는 점점 규모가 커졌다. 약 1만 년 전에 생겨난 촌락공동체는 그 뒤 약 4천 년을 거치면서 꾸준히 영역이 확대되었다. 큰 강 주변에는 더 복합적인 공동체가 생겨났고, 점차 관개를 이용한 농업도 시작되었다. 인류 최초의 도시로 알려진 시리아(Syria)의 예리코(Jericho)는 이 시기에 생겨났다【예리코가 실제로 최초의 도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유적을 통해 알려진 도시로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의미다】.
신석기시대의 농경은 고지대에서 자연 강우를 이용했다. 그러다가 인간은 점차 강 주변 토양이 비옥한 저지대까지 내려왔다. 차츰 농업 생산량이 증대하면서 인구가 늘었고 인구가 늘자 대규모 배수(排水)와 관개가 가능해졌고 그것은 다시금 인구증대를 가져왔다. 이 과정이 집중적으로 일어난 곳이 오늘날 문명의 발상지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나일 강 유역, 황허 유역 등이다. 이때부터 인류는 선사시대를 끝내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역사시대를 시작하게 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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