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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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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읽기에도 까다로운 이 라틴어 문구를 문자 그대로 옮기면, ‘기계에서 나온 신이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연극에서 시기적절하게 신이 등장해 극의 플롯을 해결해버린 데서 유래한 말이다. 극의 사실성보다 메시지를 중시했던 당시에는 실제로 기중기(起重機)와 같은 기계 장치로 공중에서 신이 내려와 꽉 막혀 있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버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거나 연출자가 연극을 연출할 때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구성하는 작업이 어렵다는 것은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해결사를 고용해버리면 앞과 뒤의 연결에 필연성이 없어진다. 더구나 갈등이 가장 고조되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관객은 맥이 탁 풀릴 수밖에 없다. 주인공이 막다른 궁지에 몰려 어찌해볼 수 없는 순간에 느닷없이 나팔이 울리며 기병대가 나타나 구조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비극에서 희극으로 바뀌는 미국의 3류 서부영화 같은 식이다.

 

하지만 고대 연극에서 그 수법이 사용된 것은 꼭 작가가 갈등을 풀어갈 극적인 모멘트(moment)를 만들지 못했거나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통쾌함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두 사람인 소포클레스(Sophocles)나 에우리피데스(Euripides) 같은 이들이 즐겨 사용했다는 것을 봐도 그렇다.

 

이후 이 용어는 막다른 상황이나 어려운 결말에서 필연성 없이 등장하여 위기를 해소하는 편의적인 역할 또는 그러한 기법을 가리키는 정식 연극 용어가 되었다. 연극만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는데, 인과성과 필연성을 중시하는 현대의 연극과 소설에서는 3류 기법의 대명사로 간주된다.

 

 

그런 3류 기법이 가장 고도한 지성을 요구하는 철학에서도 즐겨 사용되었다면 어떨까? 근대 철학의 시조인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인식 주체의 확실한 기반을 마련했으나 주체와 대상의 연관을 끝내 해명하지 못해 여기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끌어들였다. 주체가 대상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는 신이 인간에게 준 본유관념(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관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라는 관념론을 주장한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1753)는 인간이 지각하지 않는 시간에도 사물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신이 대신 지각해준다고 설명했는데, 이것도 역시 해결사를 편의적으로 고용한 결과다. 심지어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는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해명하는 대목에서, 정신이 신체기관을 작동시키는 게 아니라 실은 신이 정신과 신체가 일치하도록 예정했다고 주장했다. 철학에서는 라이프니츠의 그 편리한 학설을 예정조화설(豫定調和說)이라고 부르지만, 오히려 해결사설이라고 불러야 옳을 듯싶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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