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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사실주의(Realis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사실주의(Realis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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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Realism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은 과거에 문학과 예술은 전통적으로 귀족이나 부자들의 취미였다. 그들은 시인과 작가들을 식객(食客)으로 거느리고 후원하면서 작품을 쓰게 했고, 기념할 만한 행사가 있으면 미술가에게는 그림이나 조각을, 음악가에게는 축하 음악을 의뢰했다. 미우나 고우나 귀족과 부자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전해지는 고전 예술은 초라하고 빈약했을 것이다.

 

 

이런 양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서적 인쇄가 활성화되면서 문학은 일반 대중도 즐기는 예술이 되었다.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곧이어 미술에서도 예전처럼 귀족과 부자의 의뢰와 후원을 받지 않고 미술가들이 직접 전시회를 열어 작품을 판매하기 시작했으며, 대도시에 화랑들이 문을 열면서 미술품 시장이 형성되었다음악은 이보다 조금 늦은 20세기에 영화와 방송, 녹음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 예술이 된다.

 

예술 수요자들의 저변이 확대되면 예술의 내용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생겨난 사조가 사실주의다. 19세기 중반에 생겨난 사실주의는 고전주의의 형식미와 낭만주의의 미학에 젖은 귀족들의 심미안을 충족시키는 것보다 평범한 서민들의 삶과 구체적인 사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문학과 미술을 지향했다.

 

 

그런데 회화미술의 경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사실주의의 원칙은 역설적으로 현실의 왜곡을 포함한다. 이것은 회화의 평면성과 입체성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역설이다.

 

회화는 평평한 화폭에 입체적인 현실 세계를 담아내는 예술 양식이다. 2차원의 평면으로 3차원의 공간을 담으려니 아무래도 문제가 없을 수 없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회화 작품은 문자 그대로 평면적이었다. 당시의 화가들은 인간, 그것도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만을 그렸으며, 풍경은 배경으로만 여기고 별로 중시하지 않았다풍경화가 본격적인 회화의 장르로 자리 잡게 되는 건 17세기부터다.

 

 

그러다가 15세기 초 피렌체에서 획기적인 발명이 이루어졌다. 르네상스 시대 건축가인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1377~1446)와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가 원근법을 발명한 것이다. 새 발명품에 매료된 르네상스 화가들은 수학적인 비례로써 원근법의 규칙을 엄밀히 적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원근법이란 멀리 있는 것을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을 크게 그리는 것을 말한다. 화가들은 원근법에 따라 먼 나무들은 작게, 가까운 나무들은 크게 그렸고, 같은 길이라도 먼 곳은 폭이 좁게, 가까운 쪽은 폭을 넓게 그렸다. 그 결과 훨씬 더 생생한, 즉 현실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 원근법의 기본 논리에는 사실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원근법은 현실을 왜곡한다. 멀리 있는 나무라고 해서 가까이 있는 나무보다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며, 멀리 보이는 길이 바로 내 앞의 길보다 실제로 폭이 좁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먼 나무를 작게, 먼 길을 좁게 그리면 더 생생하고 현실적인 그림이 된다. 현실을 현실대로 그리면 사실성이 떨어지고 현실을 왜곡해서 그리면 사실성을 얻는다. 원근법이 사용되면서 회화 미술에서는 사실성과 비사실성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회화에서 사실주의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발명된 사진술이었다. 사진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대다수의 화가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그때까지 화가들은 대개 의뢰인의 부탁으로 그림을 그려주어 먹고 살았는데, 그 대부분이 초상화였다. 그런데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사진만큼 사실적일 수 있겠는가? 더구나 화가에게 그림을 의뢰하는 것보다는 가족사진 한 방 찍는 게 훨씬 값도 싸게 먹힌다. 사진의 발명은 회화 미술의 커다란 위기였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화가들은 마침내 사진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낸다. 사물, 풍경, 사람 등 현실의 모든 것은 누구의 눈에나 똑같이 보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일부 화가들은 사진으로 찍은 세상과는 다른, 자신의 눈에 비친 세상을 그렸다. 당시 그들은 인상주의자라는 모욕적인 손가락질을 받았으나 그것은 얼마 안 가 한 시대의 중요한 예술 양식을 가리키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비슷한 시기 독일의 철학자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유럽 학문의 위기를 초래한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객관성을 무기로 내세운 실증주의가 사진이라면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철학상의 인상주의자. 후설에 따르면,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부분일 뿐이다. 전체는 그 자체로 파악되는 게 아니라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 종합되어 생겨난 현상이다.

 

예를 들어 원뿔이 있다고 하자. 원뿔은 옆에서 보면 삼각형이고 위에서 보면 원이다. 따라서 원뿔을 원뿔로 인식하려면 어느 한 지점(시점)에서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뒷면까지 그린 투시도가 있어야 원뿔로서의 인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여기서도 역시 원근법이 필요해진다영어 단어 perspective는 원근법과 투시법을 모두 뜻한다. 결국 우리가 원뿔의 모양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부분적 관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직관에 의해서다. 후설은 이것을 현상학적 직관이라 불렀고, 현상학이라는 현대 철학의 중요한 사조를 열었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현상학을 알지 못했겠지만 마치 현상학 이론을 그림으로 표현한 듯한 작품을 남겼다. 코는 옆을 향하고 눈은 정면을 향한 피카소의 그림 속 인물들은, 사방의 여러 시점에서 본 인물의 모습을(뒤통수까지도) 하나의 평면 속에 표현하려 한 결과다. 3차원의 2차원화, 이것이 입체파다. 아마 피카소는 자신이 그린 기괴하고 비사실적인 인물들을 가장 사실적인 인물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듯 사실주의는 그 명칭에 걸맞지 않게 사실성과 비사실성의 모호함을 안고 있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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