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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사서(四書)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사서(四書)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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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

四書

 

 

사물놀이라고 해서 아무 악기나 넷만 모이면 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사서도 그냥 네 권의 책이 아니라 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 네 권은 유학의 기본 교재이자 중국과 한반도 왕조들의 관리 임용고시인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한 수험서이자 교과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대학 입시가 책읽기(수학능력시험)와 글쓰기(논술)로 구성된다면 옛날의 과거시험도 읽기(명경, 明經)와 쓰기(제술, 製述)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논술시험에서도 고전의 한 대목을 적절히 인용하면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과거에서도 유학의 경전을 반드시 인용해야 했다. 사서는 과거를 위한 필수적인 교과서였다.

 

현재 논술에 대비하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단 네 권뿐이니까 쉬웠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중국의 고전들이 대개 그렇듯이 사서는 어느 시대에 어느 누가 불쑥 나타나 지은 책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에 따라 내용의 첨삭이 많았으며, 편찬자에 따라 이본(異本)도 많았다. 수많은 주해서들까지 포함하면 사서는 그냥 네 권의 책이 아니라 그 자체가 방대한 도서관이나 다름없다.

 

 

사서가 중국 고전의 대표주자가 된 것은 유학을 집대성한 중국 송나라의 주희(朱熹, 1130~1200) 때부터다. 논어(論語)맹자(孟子)는 원래부터 전해지던 유학의 경전이었고, 여기에 주희가 예기(禮記)49편 중에서 발췌한 대학(大學)중용(中庸)을 포함시켜 사서를 유학의 기본 교과서로 확립했다. 그 전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들은 모두 유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했으나 주로 오경(五經)역경(易經), 서경(書經)시경(詩經)예기(禮記)춘추(春秋)을 중시한 데 반해 송나라 때부터는 사서가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사서의 지은이는 확실하지 않다. 우선 대학(大學)중용(中庸)은 그 모태인 예기자체가 누대에 걸친 기록이기 때문에, 편찬자(주희)는 분명하지만 특정한 지은이는 없다예기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가르침과 중국 각지에서 예에 관한 기록을 수집하여 편찬한 책이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지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청나라 시대에 발달한 고증학에서는 이를 부인했다. 반면 논어(論語)는 공자(孔子, BC 551~479)와 그의 제자들이 남긴 언행을 정리한 것이므로 지은이는 분명하지만 편찬자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맹자(孟子)의 경우만 지은이가 맹자임이 비교적 확실하게 전해질 뿐이다사마천의 사기(史記)』 「맹자순경열전(孟子荀卿列傳)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도 이설은 있다.

 

지은이가 불분명하다고 해도 만약 사서에 저작권을 설정한다면 저작권자는 모두 공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논어(論語)는 물론이고 대학(大學)중용(中庸)도 원래는 공자의 제자들이 만들었고 공자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주희가 편찬한 책들이며, 맹자(孟子)역시 각종 사상이 난무하던 제자백가의 시대에 공자의 사상을 부활시키기 위해 썼다.

 

 

사서는 제각기 강조점이 다르고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논어(論語)는 사람됨의 도리에서부터 한 나라, 온 세상의 경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일관된 관점으로 풀어낸다. 특히 논어(論語)의 탁월한 점은 무엇보다 전통적인 예()개념에 인의 개념을 결합한 데 있다. 공자는 인을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과 은혜를 베푸는 것[] -논어(論語)』 「양화(陽貨)으로 정의한다.

공손하면 모멸당하지 않고, 너그러우면 민심을 얻고, 믿음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신뢰하고, 민첩하면 공을 이루고, 은혜를 베풀면 사람들이 저절로 돕는다[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지금 보면 마치 도덕 교과서처럼 진부해 보이지만 당시 인이란 새로운 개념이었으며, 이것을 개인 생활만이 아니라 국가 경영의 지침으로까지 격상시킨 공자의 사상은 대단히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 예와 인의 사상에 의()개념이 더해져서 나온 것이 맹자의 왕도사상(王道思想)이다. 인을 실천하는 것이 의이므로, 무릇 제왕이라면 당연히 인의를 국가 경영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듯 맹자(孟子)는 사서 가운데 가장 정치적인 문헌이다.

 

논어(論語)가 도덕론이고 맹자(孟子)가 정치사상이라면 대학(大學)중용(中庸)은 철학서에 해당한다. 이 두 책은 합쳐 봐도 논어(論語)1/3, 맹자1/7 정도밖에 안 되는 분량이다. 짧은 분량에다 출처가 예기(禮記)로 같다는 점, 두 권 다 주희가 쓴 서문이 붙어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학(大學)중용(中庸)은 마치 쌍을 이루는 것처럼 인식되기도 하지만, 실상 주희는 두 책을 명확히 구분했다. 주희에 따르면 대학(大學)은 유학의 입문서이고 중용(中庸)은 가장 추상성이 높은 철학서다. 그래서 주희는 사서를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의 순서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大學)은 사서 가운데 가장 짜임새 있는 구성이다. 우선 명명덕(明明德, 덕을 밝힘), 친민(親民, 백성을 새롭게 함), 지어지선(止於至善, 절대 진리에 이름)3대 강령으로 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이 다음의 8조목이다. “사물을 자리매김한 뒤에 앎을 얻고, 앎을 얻은 뒤에 뜻을 세우며, 뜻을 세운 뒤에 마음을 바로잡고, 마음을 바로잡은 뒤에 몸을 닦고, 몸을 닦은 뒤에 집안을 정돈하고, 집안을 정돈한 뒤에 나라를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린 뒤에 천하를 태평케 한다[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대학(大學)의 전 내용은 모두 이 세 가지 강령과 여덟 가지 조목을 풀이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대학(大學)을 왜 유학의 입문서라고 하는지 이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학(大學)이 유학의 입문서라면 중용(中庸)은 철학으로서의 유학, 즉 유학의 결론에 해당한다. 중용(中庸)1에서는 사람이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제시한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 성품)이라 하고, 성품에 따르는 것을 도라 하고, 도를 닦는 것을 교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脩道之謂敎].”

이런 길은 어떻게 가야 하는가? 하늘의 뜻을 따라 하늘과 사람이 합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정성)은 하늘의 도요, 성을 이루려는 것은 사람의 도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20

다시 말해 사람은 하늘의 원리인 성을 깨닫고 배우고 행하는 데서 인격이 완성되며, 이것이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길이라는 뜻이다.

 

 

네 권의 책이 한 세트로 묶였으니 그것들 사이에는 뭔가 공통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서의 공통점은 중화사상 특유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한다는 데 있다. 수직적 질서라면 정점이 있을 텐데, 이것은 시간적인 것과 공간적인 것으로 나뉜다.

 

시간적인 정점은 옛것 중의 옛것’, 곧 중국 역사의 시작인 하, , 주의 삼대(三代)를 가리킨다. 그 가운데 공자(孔子, BC 551~479)는 특히 주나라의 예법을 중시했다. 전란으로 얼룩진 난세에 살았던 탓에 공자는 주나라 시대의 봉건 질서와 안정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았다. 공간적 질서의 정점은 임금, 특히 중국의 임금인 천자(天子). 천자는 북극성처럼 하늘의 중심에 붙박혀 있고 이로부터 제후, 신하, 백성이 서열을 이룬다.

(, 천하의 큰 근본)과 화(, 천하가 도달한 도)에 이르면 하늘과 땅이 제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중용(中庸)1

 

공자가 유학을 창시한 이후로 유학의 역사상 최대의 변화는 바로 주희가 이룩한 혁신이었다. 마침 두 시대는 중국이 극심한 분열기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자(孔子, BC 551~479)의 시대는 중화 세계가 탄생하기 위한 진통을 앓고 있었고, 주희의 시대는 강성해진 이민족의 침탈에 시달리는 상황이었다. 유학이 철학이나 학문이라기보다 중화적 질서를 옹호하기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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