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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Ⅶ. 단독자[獨]의 의미 - 3. ‘거울[鏡]’ 은유의 중요성과 한계, 장자의 거울은 어느 시점엔 부셔버려야 한다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Ⅶ. 단독자[獨]의 의미 - 3. ‘거울[鏡]’ 은유의 중요성과 한계, 장자의 거울은 어느 시점엔 부셔버려야 한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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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자의 거울은 어느 시점엔 부셔버려야 한다

 

 

거울로 비유되는 마음은 우리 실존이 갖는 유한과 무한의 통일성 중 무한의 측면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우리에게 내재하는 실체처럼 이해될 때 우리는 장자의 삶의 철학을 근본적으로 오독하게 되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선불교 역사 가운데 전설처럼 남아있는 혜능(慧能)과 신수(神秀)의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다음 이야기는 우리에게 마음에 대한 올바른 통찰을 제공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혜능과 신수는 모두 선불교의 다섯 번째 스승[五祖]인 홍인(弘忍)의 제자들이었다. 홍인은 관례대로 여섯 번째 스승[六祖]이 될 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자신의 가사와 그릇을 남겨주려고 하였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각자의 깨달음을 벽에 써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제자들 중 가장 신망이 높고 또 지혜로웠던 신수는 다음과 같은 시를 벽에 써놓았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이 몸이 바로 보리수[=지혜의 나무] 마음은 맑은 거울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날마다 힘써 깨끗이 닦아야 하리라! 먼지가 앉지 않도록.

 

 

그러자 나무를 하고 오던 일자무식 혜능은 이 시를 보고 웃으면서, 주위에 있던 다른 스님에게 다음과 같은 뜻의 글을 쓰도록 한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맑은 거울에는 (거울의) 틀이 없다.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 아무것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모이겠는가!

 

 

결국 홍인은 혜능에게 자신의 가사와 그릇을 넘겨주게 된다. 그런데 도대체 왜 홍인은 혜능을 깨달음을 얻은 자라고 판단하게 되었을까? 두 시를 비교해보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신수가 마음을 자족적인 실체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혜능은 마음을 실체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은 집에 먼지가 앉을까 하는 근심걱정으로 매일 집에 들어오면 청소하고 또 청소한다고 하자. 반면 다른 사람은 먼지가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여겨서 가끔 손님이 올 때나 혹은 시간이 남을 때 청소를 한다고 하자. 전자가 신수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후자가 혜능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되물어 보아야 한다. 왜 청소를 하는가? 왜 집을 그리도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가? 전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저 깨끗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집을 청소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후자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집은 자신이 쉬는 곳이자 손님들이 와서 더불어 이야기하는 곳이기 때문에 가끔은 정리정돈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수의 이야기가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사실 신수의 생각은 강박관념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혜능은 시를 통해서 신수가 가진 생각의 집착과 강박관념을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다. 혜능에 따르면 신수는 왜 마음을 닦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이전의 부처들과 선배 스님들이 수행을 했기 때문에 자신도 한다는 식일 뿐이다. 신수의 생각에는 도대체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숙고가 빠져 있다. 마음이 타자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신수는 그저 맑은 거울 자체만을 지고한 목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왜 우리가 마음을 닦아야만 하는지 신수는 알지 못한다. 신수의 이런 착각은 어디서부터 기원하는 것일까? 그것은 그가 마음을 실체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혜능은 거울에는 틀이 없다는 말로 마음을 실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했던 것이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야 한다[捨筏登岸].’ 우리는 장자의 거울 비유로부터 마음의 소통성, 타자 중심적 진리관만을 얻고 그것을 버려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거울 비유를 그대로 가지고 가려 한다면, 우리는 신수가 빠진 폐단에 다시 빠질 가능성에 노출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점에서 장자의 거울은 반드시 부서져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인용

목차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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