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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국한시사, 송시학(宋詩學)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송시학(宋詩學)의 수용, 이규보(李奎報)의 종의분방(縱意奔放)⑧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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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한시사, 송시학(宋詩學)의 수용과 한국시의 발견 - 송시학(宋詩學)의 수용, 이규보(李奎報)의 종의분방(縱意奔放)⑧

건방진방랑자 2021. 12. 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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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보(李奎報)26세 때 이미 백운시(百韻詩)를 제작하여 장편(長篇)의 저력을 과시하기 시작하였으며 환상적인 오언고시(五言古詩) 동명왕편(東明王篇)을 제작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장편이란 원래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규보가 그렇게 많은 고조장편(古調長篇)을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힘이 그렇게 한 것이다. 일필(一筆)에 삼백운(三百韻)의 기록을 이룩한 차운오동각세문정고원제학사(次韻吳東閣世文呈誥院諸學士)와 같은 작품 역시 28세의 젊은 나이에 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물과 마주할 때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호기심 때문에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를 시로써 말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했다.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시를 쓰는 효용적인 시작(詩作) 말고도 전혀 전달할 뜻이 없이 그의 놀이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작한 유희적(遊戱的)인 시작(詩作)들도 많다. 그는 앉아서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함 때문에 스스로 권귀(權貴)에게 나아가 시로써 벼슬을 구하기도 하여 시작(詩作)의 무절제를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벼슬길에 오른 40대를 지나면서 그는 주변의 관료들과 차운시(次韻詩)를 즐기고 있지만 예술적인 성취를 이룩한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음주(飮酒)로 허일(虛日)이 없었던 그는 주필(走筆)로써 명작(名作)의 천재를 과시하기도 하였지만 주필(走筆)’, ‘희작(戱作)’으로 낭비를 일삼은 시인(詩人)은 일찍이 있지 않았다.

 

 

 

 

 

 

인용

목차

서사한시

한시미학

16~17세기 한시사

존당파ㆍ존송파의 평론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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