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를 계승하여 당시의 문병(文柄)을 잡은 최자(崔滋)도 『보한집(補閑集)』 권중(卷中)에서 이규보(李奎報)의 시(詩)를 비평하는 글로 자신의 시관(詩觀)을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어릴 때부터 붓을 달리면 다 신의(新意)를 창출해내고 문사(文辭)를 토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달리는 기운이 더욱 씩씩하여 비록 성률(聲律)의 구속을 받는 가운데서 세밀하게 조탁(雕琢)하고 공묘(工妙)하게 얽어 나가더라도 호기(豪氣)가 넘치고 기묘(奇妙)하게 우뚝하며 그러나 공(公)을 천부적으로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대구(對句)나 성률(聲律)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체로 고조장편(古調長篇)을 하는 데 있어서 강운(强韻)과 험제(險題) 가운데서도 마음대로 분방하여 한꺼번에 100장을 써 내려가도 다 고인(古人)을 답습(踏襲)하지 아니하고 우뚝히 자연스럽게 만든다.
公自妙齡, 走筆皆創出新意, 吐辭漸多, 騁氣益壯, 雖入於聲律繩墨中, 細琢巧構猶豪肆奇峭, 然以公爲天才俊邁者, 非謂對律, 盖以古調長篇, 强韻險題中, 縱意奔放, 一掃百紙, 皆不賤襲古人, 卓然天成也.-崔滋, 『補閑集』 卷中
이 글에서 최자(崔滋)는 이규보(李奎報)로 하여금 철저한 개성주의자로 부각시키고 있으며 특히 이규보(李奎報)에게 있어서 기교적인 요소를 완강하게 후퇴시키고 있는 것은 최자(崔滋) 자신의 반기교적(反技巧的) 시관(詩觀)의 간접 표현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평(詩評)에 있어서 개연적(蓋然的)인 기준이 되고 있는 시의 격(格)에 대해서도 『보한집(補閑集)』 권중(卷下)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개 시를 평하는 사람은 기골(氣骨)과 의격(意格)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사어(辭語)와 성률(聲律)을 본다. 같은 의격(意格) 가운데도 그 운어(韻語)에 있어서는 혹 우열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한 수의 시에 이것들이 다 잘된 것은 극히 적다.
그러므로 이를 평하는 평어(評語)에 있어서도 말이 뒤섞여 한결같지 않다. 시격(詩格)에 이르기를 “구(句)가 노련하고 글자가 속되지 않으며 이치가 깊으면서도 의경(意境)이 뒤섞이지 않고 재주가 자유자재하면서도 기(氣)가 성내지 않고, 말은 간결하면서도 일이 어둡지 않아야 바야흐로 풍소(風騷)에 들게 된다”고 한 이 말은 스승이 될 만하다.
夫評詩者, 先以氣骨意格, 次以辭語聲律, 一般意格中, 其韻語或有勝劣, 一聯而兼得者盡寡. 故所評之辭, 亦雜而不同. 詩格曰: “句老字不俗, 理深而意不雜, 才縱而氣不怒, 言簡而事不晦, 方入於風騷.” 此言可師.
풍격비평(風格批評)에 있어서도 사어(辭語)나 성률(聲律)보다는 기골(氣骨)ㆍ의격(意格)을 앞세우고 있어 기교론적인 성률(聲律) 문제에 대하여 부정적인 자신의 태도를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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