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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민(李好閔)의 대표작인 「용만행재 문하삼도병진공한성(龍灣行在 聞下三道兵進攻漢城)」은 선조(宣祖)를 모시고 의주로 피란갔을 때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삼도(三道) 병사들이 한양에 웅거하고 있는 왜적을 치기 위하여 북진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감회를 읊은 것이다.
干戈誰着老萊衣 | 전쟁 중에 그 누가 노래자의 옷을 입으랴?? |
萬事人間意漸微 | 인간 만사 점차 뜻이 희미해지네. |
地勢已從蘭子盡 | 지세는 이미 난자도에서 다 하였고 |
行人不見漢陽歸 | 한양에서 돌아오는 행인은 찾아볼 수 없네. |
天心錯漠臨江水 | 임금님의 마음은 아득히 압록강까지 다달았는데 |
廟筭凄凉對夕暉 | 조정의 대책은 처량하게 석양만 쳐다보네. |
聞道南兵近乘勝 | 남도병이 거의 승승장구한다는 말 들었건만 |
幾時三捷復王畿 | 어느 때에 세 번 이겨 한양성을 회복할까? |
이 시는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의 기막힌 정황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이호민(李好閔)은 의주 행재소까지 임금을 모셨기 때문에 임금의 몽진(蒙塵)도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극한 상황을 직접 목도(目睹)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함련(頷聯)의 직절한 표현도 가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남용익(南龍翼)은 『호곡시화(壺谷詩話)』에서 이 시의 경련(頸聯)은 당시의 동년배로서는 감히 바랄 수도 없는 수작이라고 평하였으며 김택영은 그의 문집에서 이 시는 고금에 드문 훌륭한 작품으로 이백(李白)ㆍ두보(杜甫)라도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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