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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2. 백악시단과 진시운동(이병연)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2. 백악시단과 진시운동(이병연)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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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연(李秉淵, 1671 현종12~1751 영조27, 一源, 槎川)은 그의 아우 이병성(李秉成)과 함께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의 문하에서 시명(詩名)을 드날린 문인이다. 같은 문하인 윤봉조(尹鳳朝)나 이천보(李天輔) 등에게서 이미 인정을 받았을 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이덕무(李德懋)에게서도 사천과 같은 때에 화가로는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이 함께 백악산 아래에 살면서 문채와 풍류가 일시에 찬란했다[槎川之時 畫則趙觀我齋榮祏 鄭謙齋㪨 俱居白岳下 文采風流 輝暎一時 淸脾錄].”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는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에 의해 주도된 진시운동을 계승하여 조선의 산천을 시로써 형상화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시작(詩作) 활동은 그의 평생 지기(知己)인 겸재 정선의 산수화와 더불어 조선후기의 새로운 문화의 꽃으로 꼽힐 수 있다.

 

이병연(李秉淵)의 시 중에 현존하는 작품은 극히 일부로 사천시초(槎川詩抄)500여 수가 실려 있고, 정선의 그림에 쓴 제화시(題畵詩)가 일부 전하고 있을 뿐이다. 이병연(李秉淵)의 시작(詩作)은 지방의 승지(勝地)를 대상으로 한 것이 가장 많다. 그중에서도 금강산을 읊은 시들이 더욱 정채를 발하고 있다.

 

老釋安跌石室中

노승은 석실에서 가부좌를 하고

床前客到添香炷

불상 앞에는 객이 와서 향불을 돋운다.

有時送出半巖雲

때때로 바위 구름을 밖으로 내보내고

閒看江南千里雨

한가로이 강남의 천리우를 바라다 본다. 대동시선(大東詩選)6

 

금강산의 보덕굴을 읊은 보덕굴중석실(普德窟中石室)이다. 이병연(李秉淵)1712년 김화현(金化縣)의 읍재(邑宰)로 있으면서 정선과 함께 생활하던 때의 작품이다. 보덕굴의 자연경관보다는 석실에 거처하는 노승의 초연한 석실생활을 그려내어 절간의 청정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다음은 금강산 원통골을 읊은 이병연(李秉淵)원통(圓通)이라는 작품이다.

 

圓通洞裏踏明沙

원통골 속으로 고운 모래 밟고 가는데

雨歇鳩鳴山路斜

비 그치자 비둘기 울고 산길은 빗기었네.

知是曉來溪力健

새벽녘에사 시냇물 세찬 것을 알겠거니

紛紛搖落木蓮花

어지러이 목련화 떨어진 걸 보네. 대동시선(大東詩選)6

 

섬세하게 묘사에 공을 들이지 않고서도 비온 뒤의 원통골의 모습을 알기 쉽게 그리고 있다. 계곡을 따라 모래를 밟으며 원통골로 들어서는 길에 산비둘기 울고 목련화가 흐드러지게 떨어져 흐르는 모습은 바로 원통골을 직접 밟아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경지이다.

 

보덕굴중석실(普德窟中石室)원통(圓通)두 작품에서 본 바와 같이 사천(槎川)의 산수기행시는 수식이나 조탁에 따로 공을 들인 흔적없이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분위기를 끌어내어 조선 산천의 아름다움을 직접 체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사천의 시를 두고 이덕무(李德懋)송대(宋代)의 양만리(楊萬里)와 범성대(范成大)의 시격(詩格)을 잘 본받았다라 평가한 바 있는데, 이는 양만리나 범성대가 이룩한 산수시의 성과가 곳곳의 자연경물을 전고나 역사에 의존하지 않고 생동감있게 묘사해낸 점과 상통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결국 백악시단의 시문에서 강조되던 우경모진(遇境摸眞)’, ‘천경기실(踐境記實)’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현장이기도 하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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