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윤(鄭芝潤, 1808 순조8~1858 철종9, 자 景顔, 호 壽銅)은 성품이 경개(耿介)하고 얽매이기 싫어하며 ‘벽오기굴(僻奧奇堀)’하였으나 문자(文字)에 매우 총명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기이하게 여겨 정지윤(鄭芝潤)을 머물게 하여 소장한 도사(圖史)를 읽게 했다 한다. 최성환(崔瑆煥)이 그의 시고(詩藁)를 수집하여 하원시초(夏園詩抄) 1권을 간행하였다.
정지윤(鄭芝潤)의 문학론은 장지완(張之琬)과 마찬가지로 성령론적이다.
성령이 한번 붙으면 붓끝을 다할 따름이지 시체(時體)나 신풍(新風)을 좇거나 섬세한 것을 다투지 않는다
性靈一付央毫尖, 不遂時新競巧纖. 『夏園詩草」, 「丁未臘月」 其一
여기서 보이는 성령 역시 인간이 지닌 영묘한 정신작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결국 시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호젓한 길은 때로 혼자서 갈 수 있는 것이니, 그대 부디 대가의 울타리에 기대지 말게나
幽徑只堪時獨往, 勸君莫奇大家藩 『夏園詩草』 권1, 「作詩有感)
위와 같은 명구(名句)를 남겼는데, 여기서도 역시 성령의 발휘가 곧 개성과 연결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지윤(鄭芝潤)은 성령의 발휘를 중시하면서도 시의 단련 또한 중히 여겼는데, 그러한 시의 양상을 「매화(梅花)」에서 보기로 한다.
一任繁華與寂寥 | 번화한 곳이든 조용한 곳이든 가리지 않고 |
春頭臘尾也消搖 | 봄이 시작되는 섣달에 응당 나서기 시작하네. |
纔於有意無情處 | 비로소 뜻은 있고 정은 없는 곳에 |
已壓千花不敢驕 | 이미 온갖 꽃들을 누르고도 감히 교만하지 않네. |
감정의 움직임이 없이 시를 쓰기 때문에 그의 시세계는 한청(寒淸)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의 시는 윤기(潤氣)가 없다. 봄이 오면 매화(梅花)는 온갖 꽃보다 먼저 피기 마련이지만 조금도 교만하지 않다는 것이 이 시의 주지(主旨)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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