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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8. 하대부의 방향과 불평음(장지완)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8. 하대부의 방향과 불평음(장지완)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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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완(張之琬, 1806 순조6~1858 철종9, 玉山, 枕雨堂)4대에 걸친 무변(武弁) 가계에서 율과(律科) 출신으로 변전(變轉)중인(中人)으로 처음에는 아버지 덕주(德冑)에게서 수학하였으나 뒤에 이학서(李鶴棲)의 문인이 되었고, 김초암(金初菴)과 홍직필(洪直弼)을 찾아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장지완(張之琬)의 생애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전이나 행장 등이 전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역정은 알 수 없으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고서도 대접받지 못하는 기술관(技術官)의 고뇌를 우회적으로 토로한 술회시(述懷詩)가 산견(散見)되는 것으로 보아 그의 인간경애(人間境涯)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그가 문학에 바친 열성은 비연시사(斐然詩社)의 결성과 풍요삼선(風謠三選)의 간행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한편 철종(哲宗) 2(1851) 4, 5월에 걸쳐 통예원(通禮院)ㆍ관상감(觀象監)ㆍ사역원(司譯院)ㆍ전의감(典醫監)ㆍ혜민서(惠民署)ㆍ율학(律學)ㆍ산학(算學)ㆍ도화서(圖畵署)ㆍ사자청(寫字廳)ㆍ검루청(檢漏廳)의 중인 1872여명이 집단 소청운동을 일으킬 때 장지완(張之琬)은 율관(律官) 출신으로 별유사(別有司)에 추천되어 상소문의 작성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중인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대사회적 활동에도 장지완(張之琬)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장지완(張之琬)장혼(張混)의 문하에서 사귄 장효무(張孝懋)ㆍ임유(林瑜)ㆍ고진원(高晉遠)ㆍ박사유(朴士有)ㆍ한백섬(韓伯瞻) 등과 어울려 비연시사(斐然詩社)를 결성하고, 오직 시문에만 뜻을 두고 자연 속에 노닐었으며 현기(玄錡)ㆍ정지윤(鄭芝潤) 등과 어울리어 시교(詩交)를 맺기도 하였다.

 

장지완(張之琬)은 성령론적 시론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문학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시작 역시 성령의 자유로운 발로에 치중하고 있다. 그가 침우담초서(枕雨談艸序)에서 "시는 성령(性靈)陶寫하는 것이라 한 지적이나, 서자암화도소집(書自庵和陶邵集)에서 시가 성정에서 나오는데 세상에 성정이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詩出性情, 世無無性情之人, 故無無詩之人]”라 한 말은, 원매(袁枚)에 바로 앞서 을 제창했던 청대 오뇌발(吳雷發)시로 성정을 말하고 사람은 각각 성정이 있으니 또한 사람은 각각 시가 있을 뿐이다[詩以道性情, 人各有性情, 則亦人各有詩耳].”와 같은 주장이다. 이는 결국 시인의 개성(個性), 시의 개성(個性)을 강조한 말로서, 곧 시에서 자성일가(自成一家)를 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장지완(張之琬)의 시작들은 침우당집(沈雨堂集)비연상초(斐然箱抄)로 정리되어 있는데, 그 대부분이 기행시로 채워져 있다. 인정세태(人情世態)를 진솔하게 묘파한 남전도중기견(南甸途中記見)중 두 수를 보기로 한다.

 

官道城邊矗石危 도성 주변의 관도에는 쌓아놓은 돌이 위태롭고
粉墻新塑女郞祠 채색한 담장에는 새로 지은 성황당이 있네.
行人漫把金錢擲 지나는 사람들은 어지러이 쇠돈을 던지고
枯樹枝頭五色絲 마른 나무 가지 끝에는 오색실이 걸렸네.

 

山木蒼蒼鷄犬鳴 푸르른 숲에 개닭이 짖는데
拄筇斜日問前程 저물녘 지팡이 짚고 갈길을 묻네.
村中少女太羞澁 마을의 소녀는 너무 부끄러워
半掩紅裙背面行 붉은 치마로 반쯤 가린 채 등 돌리고 가네.

 

장지완(張之琬)이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단촐하게 그린 8수 가운데 두 수이다. 이와 같이 장지완(張之琬)의 기행시들은 대체로 직접 목도한 경관과 인정을 소박하게 그린 것이 특징적이다. 시작(詩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평양죽지사(平壤竹枝詞)(20)와유편(臥游篇)(80)도 같은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다음 시구에서 우리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위항인(委巷人)의 피맺힌 호소를 생생하게 얻어 들을 수 있다.

 

良犬馬爲友 老忠猶可稱 좋은 개는 말과 가까워 충성을 하는 일은 칭송할 만하다.
下與彘爲比 共歸廚下烝 그러나 아래로 돼지꼴이 되면 다같이 부엌에서 삶기게 되나니. 枕雨堂集1, 閒居有感自然宗人22

 

부림을 당할 때에는 문자 그대로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지만, 버림을 받게 될 때에는 개돼지 신세로 돌아가는 중인(中人) 사회(社會)의 불평음(不平音)이 너무도 간절하게 그리고 우회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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