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에 더부살이하며 짓다
북산잡제(北山雜題)
이규보(李奎報)
欲試山人心 入門先醉奰
욕시산인심 입문선취비
了不見喜慍 始覺眞高士
료불견희온 시각진고사
高巓不敢上 不是憚躋攀
고전불감상 불시탄제반
恐將山中眼 乍復望人寰
공장산중안 사부망인환
山花發幽谷 欲報山中春
산화발유곡 욕보산중춘
何曾管開落 多是定中人
하증관개락 다시정중인
山人不浪出 古徑蒼苔沒
산인불랑출 고경창태몰
應恐紅塵人 欺我綠蘿月
응공홍진인 기아록라월 『東國李相國全集』 卷第十二
해석
欲試山人心 入門先醉奰 | 산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려 문에 들어가자마자 먼저 취한 척하며 화내지만 |
了不見喜慍 始覺眞高士 | 끝내 기뻐함과 화냄을 드러내지 않으니 비로소 참된 고사임을 깨닫게 됐네. |
해설
이규보는 24세 되던 해 가을에 부친상을 당한 뒤 천마산에 우거(寓居)하였는데, 이때 백운거사(白雲居士)라 자호(自號)하고 산과 관련된 시를 지었다.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는 “시를 짓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정겨운 풍경을 창조하여 그것을 묘사하고 형용하는데 한마디로 다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옛사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규보의 「북산잡제」에서 이른 ……(중략)…… 이와 같은 형용은 비록 옛사람이라도 쉽게 이를 수 없는 것이다.[作詩非難. 能造情境摸寫形容, 一言而盡, 此古人所難. 如李文順北山雜題云: ‘欲試山人心, 入門先醉奰. 了不見喜慍, 始覺眞高士.’ 如此形容. 雖古人亦未易到].”라고 평하고 있다.
해석
高巓不敢上 不是憚躋攀 | 높은 봉우리에 감히 오르지 못하는 것은 오르는 것을 꺼려서가 아니라 |
恐將山中眼 乍復望人寰 | 산속의 안목으로도 잠깐 다시 인간세상[人寰] 보일까 걱정되어서지. |
해석
山花發幽谷 欲報山中春 | 산꽃이 깊숙한 골짜기에 피어 산 속 봄을 알리려 하네. |
何曾管開落 多是定中人 | 어찌 일찍이 피고 짐을 주관하랴? 대개 선정에 든 사람인 걸. |
해설
깊은 골짜기에 봄꽃이 피어 산중에도 봄이 왔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듯하다. 그러나 꽃이 피고 지는 것에 대해 이 산속에 사는 사람들은 선정에 든 사람들이라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 시는 산속에 사는 이들의 탈속(脫俗)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해석
山人不浪出 古徑蒼苔沒 | 산 사람이 유랑하며 외출치 않아 옛 길이 푸른 이끼에 잠겼네. |
應恐紅塵人 欺我綠蘿月 | 응당 두렵네. 속세의 사람이 나의 등라(藤蘿) 사이에 뜬 달을 속일까. 『東文選』 卷之十九 |
해설
강상 산에 사는 사람이 산을 내려가지 않아 길이 묵은 이끼로 덮여 버렸다. 왜 내려가지 않았을까? 아마도 속세 사람들이 담쟁이넝쿨 사이로 뜬 달빛을 구경하는 자신만의 행복을 깨트릴까 두려워서 그런 것일 것이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은연중에 산신령이 자기를 버리고 떠난 속인을 못 오게 하는 뜻이 있다[隱然有山靈移文之意].”라고 평하고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145~14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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