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산에서
수양산(首陽山)
성간(成侃)
峨峨首陽山 故人卜築於焉遊
興來高歌載芝曲 岸巾扶杖柴門幽
黃錡胡爲在山中 彼蒼回斡良悠悠
嗚呼
山中陰岑不可處 魑魅魍魎令人愁
亭亭首陽山 上有朱鳳求其曹
下有黃鵠似老翁 折筋步步偏哀呼
時時側頭望山巓 蒼雲如狗蹲落日
嗚呼安得一黃鵠 得使鳳也分竹實
夢入首陽山 愁雲憑憑欲吼怒
靑兕黃熊怒我啼 萬丈層崖緣細路
不知故人在何處 薰水千山日欲暮
嗚呼
忽然覺來天欲昏 萬慮關心淚如雨 『眞逸遺稿』 卷之二
해석
峨峨首陽山 아아수양산 |
깎아지른 수양산아! |
故人卜築於焉遊 고인복축어언유 |
친구가 여기에 집 짓고 노닐었지. |
興來高歌載芝曲 흥래고가재지곡 |
흥이 오면 높은 노래에 은자의 노래인 자지곡(紫芝曲)【자지곡(紫芝曲): 은자(隱者)의 노래를 뜻한다. 진(秦)나라 말기에 동원공(東園公)ㆍ기리계(綺里季)ㆍ하황공(夏黃公)ㆍ녹리선생(甪里先生) 등 이른바 사호(四皓)가 폭정을 피해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자지(紫芝), 즉 영지(靈芝)를 캐어 배고픔을 달래며 천하가 안정되기를 기다린 고사가 있는데, 이때 그들이 지어 불렀다는 노래 가사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색깔도 찬란한 영지버섯이여, 배고픔을 충분히 달랠 수 있지. 요순의 시대는 멀기만 하니, 우리들이 장차 어디로 돌아갈까. 고관대작들을 보게나, 근심이 또 얼마나 많은가. 부귀하면서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단, 빈천해도 내 뜻대로 사는 것이 더 낫도다[曄曄紫芝 可以療飢 唐虞世遠 吾將何歸 駟馬高蓋 其憂甚大 富貴之畏人 不如貧賤之肆志].” 『高士傳』 卷中】을 싣고 |
岸巾扶杖柴門幽 안건부장시문유 |
두건 젖히고【안건(岸巾): 두건을 뒤로 제껴 써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게 하는 것. 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아무에게나 친근하게 대면하는 것을 말한다. 이설에는 미천한 자가 쓰는 두건이라고도 한다.】 지팡이 집으니 사립문은 그윽하다네. |
黃錡胡爲在山中 황기호위재산중 |
노란 솥이 어째서 산 속에 있는가? |
彼蒼回斡良悠悠 피창회알량유유 |
저 창공이 돌고 도는 건[回斡] 진실로 아득한 일이지. |
嗚呼 오호 |
아! |
山中陰岑不可處 산중음잠불가처 |
산 속의 그늘진 봉우리엔 살 수가 없으니 |
魑魅魍魎令人愁 리매망량령인수 |
도깨비만인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네. |
亭亭首陽山 정정수양산 |
우뚝하고 우뚝한 수양산아! |
上有朱鳳求其曹 상유주봉구기조 |
위엔 붉은 봉황이 그 무리를 구하고 |
口銜瑞圖彩翮長 구함서도채핵장 |
입으로 상서로운 그림인 하도(河圖) 물었고 빛나는 깃털 길구나. |
擧意八極聲嗷嗷 거의팔극성오오 |
맘으로 팔극을 들고 소리치니 왁자지껄하네. |
下有黃鵠似老翁 하유황곡사로옹 |
아래엔 노란 고니가 늙은 이 같아 |
折筋步步偏哀呼 절근보보편애호 |
힘줄 꺾으며 거닐고 거닐다가 한쪽에서 구슬피 우네. |
時時側頭望山巓 시시측두망산전 |
이따금 머리를 돌려 산의 정상을 바라보니 |
蒼雲如狗蹲落日 창운여구준락일 |
푸른 구름이 개 같고 쪼그려 앉으니 해가 지네. |
嗚呼安得一黃鵠 오호안득일황곡 |
아! 어찌 한 마리 노란 고니를 얻어 |
得使鳳也分竹實 득사봉야분죽실 |
봉황을 시켜 대나무 열매 나누게 할까? |
夢入首陽山 몽입수양산 |
꿈에 수양산에 들어가니 |
愁雲憑憑欲吼怒 수운빙빙욕후로 |
근심의 구름이 왕성하여[憑憑] 성냄을 포효하려 하네. |
靑兕黃熊怒我啼 청시황웅로아제 |
푸른 외뿔소와 노란 곰이 나를 화내며 울어대니 |
萬丈層崖緣細路 만장층애연세로 |
만 길이의 겹친 벼랑에 이어진 좁은 길로 가네. |
不知故人在何處 부지고인재하처 |
알지 못하겠네. 옛 친구는 어디 있나? |
薰水千山日欲暮 훈수천산일욕모 |
따스한 물과 뭇 산에 해가 지려 하네. |
嗚呼 오호 |
아! |
忽然覺來天欲昏 홀연각래천욕혼 |
갑자기 깨어 하늘이 어두워지려 해서 |
萬慮關心淚如雨 만려관심루여우 |
뭇 생각이 마음을 관여해 눈물이 빗물 같구나. 『眞逸遺稿』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꿈속에 수양산에 들어간 것을 묘사한 시로, 꿈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소외된 불안한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낮에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 수양산에 들어갔다. 그런데 근심의 구름이 성난 듯 울부짖으려 하고, 푸른 외뿔소와 누런 곰이 나에게 성내며 으르렁거려 그들을 피하려고 까마득한 절벽 위 가느다란 길을 따라 달아났다. 목적지인 친구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수없이 쌓인 첩첩산중의 물과 산에 해가 저물어 간다. 불안이 극도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깨어나니, 하늘이 저물어 가려 한다. 꿈속에서도 저물어 가고 있고 현실로 돌아온 세계 역시 저물어 가고 있어, 온갖 시름이 일어나 눈물이 비 오듯 한다.
「본전(本傳)」에 중국 사신도 성간(成侃)의 시를 보고 탄복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중국 사신 예겸이 사명을 띠고 우리나라에 왔을 때 성진일이 남을 대신하여 그를 전송하는 시를 지었다. 예겸이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면서, ‘동국 문장이 중국보다 못지않다.’ 하였다[華使倪謙奉使東來, 成眞逸代人作送行詩. 倪謙見之, 不覺屈膝曰: ‘東國詞藻, 不減中國矣.]”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126~127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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