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녘 광양에서 차운하며
모차광양(暮次光陽)
정약용(丁若鏞)
小聚依山坂 荒城逼海潮
소취의산판 황성핍해조
漲霾官樹暗 含雨島雲驕
창매관수암 함우도운교
烏鵲爭虛市 蠯螺疊小橋
오작쟁허시 비라첩소교
邇來漁稅重 生理日蕭條
이래어세중 생리일소조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一卷○詩集
해석
小聚依山坂 荒城逼海潮 | 작은 취락이 산 언덕에 의지했고 황량한 성은 바다 조수에 핍박 당하네. |
漲霾官樹暗 含雨島雲驕 | 흙비 내린 관청의 나무는 어둡고 비 머금은 섬의 구름은 제멋대로 나네. |
烏鵲爭虛市 蠯螺疊小橋 | 까마귀와 까치가 빈 저자에서 다투고 조개와 소라가 작은 다리에 겹겹이 있네. |
邇來漁稅重 生理日蕭條 | 근래 물고기세 무거워 생계는 날로 서글퍼지네.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一卷○詩集 |
해설
이 시는 1780년 전라도 광양에 이르러 느낀 쓸쓸한 시골의 풍경에 대해 읊은 것이다.
다산이 본 어촌의 풍경은 살기 좋은 평화로운 마을이 아니다. ‘황성(荒城)’, ‘장종(張鍾)’, ‘함우(含雨)’, ‘오작(烏鵲)’ 등의 시어(詩語)가 풍기는 분위기는 쓸쓸하고 음산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결국 어촌 마을에 매겨지는 무거운 漁稅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거의 동시에 살았던 신위(申緯)의 시에서는 이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시 「심화(尋花)」는 다음과 같다.
乳燕鳴鳩村景閑 유연명구촌경한 |
어린 제비와 우는 비둘기 마을 풍경 한가로운데 |
郭熙平遠畫春山 곽희평원화춘산 |
곽희가 아득히 봄 산을 그렸는가 |
臥溪楊柳壓籬杏 와계양류압리행 |
냇가에는 버들, 울 너머에는 살구꽃 |
粧點黃茅八九間 장점황모팔구간 |
누른 띳집 팔구 칸이 새 단장하고 있네 |
신위(申緯)는 발랄하고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등장하는 사람이 없다. 자연과 완전히 대상화하여 그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과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자연을 직접 연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거리를 유지하여 자연 밖에서 자연을 들여다볼 때는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다.
자연(自然)을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대결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관점이고, 둘째는 자연과의 일정한 심미적(審美的)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연을 주로 미적(美的) 관조(觀照)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관점이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서 생활하는 어부들이 보는 강과, 기생들을 태우고 뱃놀이를 하는 자들이 바라보는 강은 위의 두 가지 관점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송재소, 『다산시연구』). 이런 관점이 다산(茶山)과 신위(申緯)의 자연관(自然觀)에 차이를 낳고 있는 것이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331~332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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