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부전도’에 쓴 제화시
제서호부전도(題西湖浮田圖)
정약용(丁若鏞)
下田多水常苦雨 高田高燥旱更苦
西湖浮田兩無憂 歲歲金穰積高庾
縛木爲筏竹爲艌 上載叟叟尺許土
不用犂耙撥春泥 但將耬斗播早稌
水高則昂低則低 苗根常與水面齊
暴尫無聞桔槹響 祭禜不煩黿鼉隄
芙蕖菱芡錯雜起 朱華綠穗行相迷
耘婦朝乘畫船入 秧歌晚蹋紅橋躋
豈唯民殷嫌地窄 遂將人智違天厄
龍尾玉衡總多事 鉗盧白渠皆陳跡
殘氓寸土如黃金 況乃膏腴異鹹斥
銍艾未許輸豪門 租稅仍當漏王籍
我向野農披丹靑 冷齒不肯虛心聽
赭山何處著斤斧 白澱無地覓泓渟
有田則耕無則已 智力由來安絜瓶
萬人束手仰冥佑 鞭龍疈牲祈山靈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五卷○詩集
해석
下田多水常苦雨 하전다수상고우 |
낮은 밭엔 많은 물로 항상 비 괴롭고 |
高田高燥旱更苦 고전고조한갱고 |
높은 밭엔 높고 건조해 가뭄이 더욱 괴롭네. |
西湖浮田兩無憂 서호부전량무우 |
서호의 물 뜬 밭은 두 가지 근심 없어 |
歲歲金穰積高庾 세세금양적고유 |
해마다 풍년으로 쌓임이 창고에 높지. |
縛木爲筏竹爲艌 박목위벌죽위념 |
나무 엮어 뗏목 만들고 대나무로 배 만들어 |
上載叟叟尺許土 상재수수척허토 |
몇 자의 흙을 쓱쓱[叟叟]【『시경』 「대아(大雅) 생민(生民)」의 “우리 제사를 어떻게 지내는가 하면, 혹은 방아를 찧고 혹은 절구질을 하며, 혹은 까불고 혹은 비비며, 쌀을 물에 썩썩 씻고, 솥에 쪄서 푹푹 김이 오르게 한다.[誕我祀如何 或舂或揄 或簸或蹂 釋之叟叟 烝之浮浮]”라는 말이 있다】 실어 |
不用犂耙撥春泥 불용리파발춘니 |
쟁기와 써레로 봄 진흙을 고를 것 없이 |
但將耬斗播早稌 단장루두파조도 |
다만 씨 뿌리는 말 가지고 찰벼 파종하네. |
水高則昂低則低 수고즉앙저즉저 |
물이 높아지면 떠오르고 낮아지면 가라앉지만 |
苗根常與水面齊 묘근상여수면제 |
묘의 뿌리는 항상 수면과 나란하네. |
暴尫無聞桔槹響 폭왕무문길고향 |
폭왕【폭왕(暴尫): 앞곱사를 뙤약볕 밑에 앉히는 것을 말한다. 앞곱사는 얼굴이 항상 위로 들려 있기 때문에 가뭄에 이 앞곱사를 뙤약볕 밑에 앉혀 두면 하늘은 그의 얼굴이 강한 햇빛에 타는 것을 불쌍히 여겨 비를 내려준다는 뜻으로 이를 행하였다.】에도 두레박소리 들리지 않고 |
祭禜不煩黿鼉隄 제영불번원타제 |
제사 지낼 때【영제: 수해(水害)ㆍ한재(旱災)ㆍ여역(癘疫) 등을 물리치기 위하여 산천의 신에게 비는 제사.】 악어방지에 번거롭지 않네. |
芙蕖菱芡錯雜起 부거릉검착잡기 |
연꽃[芙蕖]과 마름과 가시연꽃이 섞여 자라 |
朱華綠穗行相迷 주화록수항상미 |
붉은 꽃과 녹색 이삭의 줄이 서로 어지럽지만 |
耘婦朝乘畫船入 운부조승화선입 |
김 매는 아낙은 아침에 그림배 타고 들어가서 |
秧歌晚蹋紅橋躋 앙가만답홍교제 |
모내기 노래로 저녁에 붉은 다리 밟고 오르지. |
豈唯民殷嫌地窄 기유민은혐지착 |
어찌 백성이 많고 땅 좁다고 불평하리오? |
遂將人智違天厄 수장인지위천액 |
마침내 사람의 지혜를 가지고 하늘의 재앙에서 달아나니 |
龍尾玉衡總多事 룡미옥형총다사 |
용미와 옥형【용미 옥형: 흐르는 강물을 높은 지대로 인양하는 용미거(龍尾車)와 깊은 샘물을 자아올리는 옥형거(玉衡車). 『農政全書』】 죄다 번거로운 일이고 |
鉗盧白渠皆陳跡 겸로백거개진적 |
겸로【겸로(鉗盧): 중국 등주(鄧州)에 있는 방죽 이름. 겸로피(鉗盧陂). 육문언(六門堰)과 함께 한(漢)의 순리(循吏) 소신신(召信臣)이 굴착한 것으로 그 저수량이 5만 경(頃)을 관개할 수 있다고 함.『杜佑通典』】와 백거【백거(白渠) : 중국 섬서성(陝西省) 경내에 있는 구거(溝渠) 이름. 한(漢)의 백공(白公)이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임.】 모두 진부한 자취이지. |
殘氓寸土如黃金 잔맹촌토여황금 |
남은 백성에게 한 마디 땅도 황금 같으니 |
況乃膏腴異鹹斥 황내고유리함척 |
더군다나 기름 져서 짠 갯벌과 다름에랴. |
銍艾未許輸豪門 질애미허수호문 |
베어도 부잣집에 보내길 허용하질 않고 |
租稅仍當漏王籍 조세잉당루왕적 |
조세도 연이어 응당 공문 문서에서 빠지네. |
我向野農披丹靑 아향야농피단청 |
내가 농부를 향해 그림을 펴보이니 |
冷齒不肯虛心聽 랭치불긍허심청 |
이가 시린 지 빈 마음으로 듣길 기꺼워하지 않네. |
赭山何處著斤斧 자산하처저근부 |
“벌거벗은 산의 어느 곳에 도끼질을 하겠는가? |
白澱無地覓泓渟 백전무지멱홍정 |
얕은 물에다 땅조차 없는데서 넓고 맑은 물 찾는 격이죠.” |
有田則耕無則已 유전칙경무칙이 |
“밭이 있으면 밭 갈고 없으면 그만이니 |
智力由來安絜瓶 지력유래안혈병 |
지력이 예로부터 어찌 병을 잴 수 있으리오?” |
萬人束手仰冥佑 만인속수앙명우 |
뭇 사람들이 손을 묶은 듯 신명한 도움을 우러러 |
鞭龍疈牲祈山靈 편롱疈생기산령 |
용을 채찍질하고 희생물을 쪼개 산신령에게 빌기만 하네. 『與猶堂全書』 第一集詩文集第五卷○詩集 |
해설
이 시는 1807년 누구의 그림인지 알 수 없는 「서호부전도」라는 그림을 보고 쓴 것으로, 자연을 개조해 나가는 인간의 위대한 능력에 대한 신념이 짙게 배어 있는 시이다.
다산(茶山)에게 있어 자연(自然)은 자연의 밖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관조(觀照)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연을 극복하여 편리하게 이용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위의 시에서도 자연을 정복한 점과 기술의 발달로 생산력이 증대하는 발전적 면모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
다산(茶山)은 「맹자요의(孟子要義)」에서 『맹자(孟子)』 「진심(盡心)」의 “만물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萬物皆備於我].”에 대한 주자(朱子)의 해석을 비판하면서, “천지만물의 이(理)는 각기 만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인데, 어찌 다 나에게 갖추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개에는 개의 이(理)가 있고 소에는 소의 이(理)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데, 어찌 억지로 큰소리를 치면서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으랴[天地萬物之理 各在萬物身上 安得皆備於我 犬有犬之理 牛有牛之理 此明明我之所無者 安得強爲大談曰皆備於我乎].”라 하였다.
주자는 “이것은 리(理)의 본연을 말한 것이다. 크게는 군신과 부자간에서, 작게는 미세한 사물에까지 그 당연지리(當然之理)가 성분(性分) 안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此言理之本然也. 大則君臣父子, 小則事物細微, 其當然之理, 無一不具於性分之內也].”라 하였다.
이에 대해 다산은 인간과 자연과의 동질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질성의 부인으로 인해, 인간이 자연을 순응하면서 살 것이 아니라, 개조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성리학자(性理學者)들이 보는 자연관(自然觀)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앞에서 보았던 퇴계(退溪)는 「보자계상 유산지서당(步自溪上 踰山至書堂)」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花發巖崖春寂寂 화발암애춘적적 |
꽃이 가파른 벼랑에 피어 봄은 고요하고 |
鳥鳴澗樹水潺潺 조명간수수잔잔 |
숲에 울어 시냇물은 잔잔하네 |
偶從山後攜童冠 우종산후휴동관 |
우연히 산 뒤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
閒到山前問考槃 한도산전문고반 |
한가히 산 앞에 와 고반을 묻는다 |
자연과의 혼연일체(渾然一體)로 천리(天理)에 순응함을 노래하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335~33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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