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춘(춘천의 고호)으로 가는 길에서
수춘도중(壽春道中)
강위(姜瑋)
襪底江光緣浸天 昭陽芳艸放筇眠
浮生不及長堤柳 過盡東風未脫綿 『古歡堂收艸詩稿』 卷之二
해석
襪底江光緣浸天 말저강광연침천 |
양말 밑의 강 빛이 하늘에 이어져 침범하니 |
昭陽芳艸放筇眠 소양방초방공면 |
소양강 향긋한 풀에 지팡이 내려놓고 잠자네. |
浮生不及長堤柳 부생불급장제유 |
뜬 삶은 긴 둑의 버들개지에 미치지 못해 |
過盡東風未脫綿 과진동풍미탈면 |
봄바람이 죄다 지나도록 솜옷 벗질 못하네. 『古歡堂收艸詩稿』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춘천 소양강의 버들 둑에서 길을 가던 도중 소회(所懷)를 읊은 것이다.
소양강 발밑 강 빛은 하늘에 잠겨 푸른데, 소양강 가에 피어 있는 방초에 지팡이를 던져두고 잠을 청한다. 부평초 같은 내 인생은 저 긴 둑에 자란 버들에도 미치지 못하여, 봄이 다 지나도록 겨울 웃인 솜옷을 벗지 못하고 있다(때를 만나지 못한 울분의 잠재의식을 느낄 수 있다).
강위(姜瑋)는 무인(武人) 집안에서 무인(武人)이 되기보다는 문인(文人)이기를 바랐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길이 막혔다. 하지만 북학파(北學派)인 홍대용(洪大容)ㆍ박지원(朴趾源) → 박제가(朴齊家) → 제자 김정희(金正喜) → 제자 강위(姜瑋),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朴珪壽)에 이르러 개화파 형성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는 중국인 지기(知己)인 황옥(黃鈺)에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상황효후시랑서(上黃孝侯侍郞[鈺]書)」에서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24세에 아버님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뒤에 묵은 병이 조금 나은 듯하여 비로소 경서(經書)를 부지런히 공부하는 데 마음을 쏟았고 아울러 송(宋) 사자서(四子書)를 수년간 익혔습니다. 그 뒤 민노행 선생을 뵙게 되어 경서(經書)의 바른 뜻을 듣기를 청하였으나, 선생께서는 책상을 어루만지시며 오랫동안 한숨만 쉬다가 말씀하시길, ‘내가 궁벽한 곳에 살면서 경전의 뜻만 연구한 지가 50년이 되었으나, 남에게는 한마디도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뿐인데, 너는 이를 배워서 무엇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이 무언가 다른 점이 있으리라 생각되어서 굳이 청하여 스승으로 받들기 4년 만에 선생은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임종 자리에서 선생님은 저를 김정희 선생께 위촉하여 끝까지 가르쳐 주기를 부탁하고 가셨습니다. 그때 김 선생님께서는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계셨는데 수륙 이천 리 길을 찾아가 뵈었더니, 역시 한숨만 쉬시고 한 말씀도 없기는 민 선생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윽고 말씀하시길, ‘너는 나를 보지 못하느냐? 경서를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이 같은데, 이것을 공부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저는 더욱 남다른 무엇이 있으리라 생각되어 선생을 모시고 제주도에서 3년간 배웠습니다. 선생께서는 제주도의 귀양이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북쪽으로 귀양 가시게 되었는데, 저는 함께 모시고 가서 1년이 넘도록 계속 배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 헤아려 보니, 흉중에 전일과 달라진 점이 있음을 분명히 깨달았지만 과연 한마디로 남에게 말할 수 없었고, 설사 말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유익한 점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二十四歲 始承親敎已之快 如貞痼頓愈 始得專意劬經 兼習宋四子書數年 遇閔杞園 先生 願聞經旨 先生撫案太息者久之 乃曰 吾窮居治經訓五十餘年 不能以一語告人 子欲學此何爲 某異其言 固請師之四年 先生歾 臨逝 囑阮堂金先生 正喜 終敎之 時金先生謫居瀛海中 水陸路二千旣謁 金先生又太息不語 一如閔先生爲者 曰 子不見我乎 治經之効如此 學此究何用 某尤異之 遂居海外三年 先生宥還 不幾何 又竄北塞 某又從往踰年 自査胷中 似有與前日異者 然果不可以一語告人 雖告之無益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357~359쪽
인용
'한시놀이터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위 - 시김혜사(示金蕙史) (0) | 2021.04.14 |
---|---|
강위 - 노회유난석연자 불이우언(老懷有難釋然者 不已于言) (0) | 2021.04.14 |
김정희 - 추정(秋庭) (0) | 2021.04.14 |
김정희 - 별탐라백지임(別乇羅伯之任) (0) | 2021.04.14 |
김정희 - 승(蠅) (0) | 2021.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