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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5. 내가 정말 ‘그’일까?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 5. 내가 정말 ‘그’일까?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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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정말 일까?

 

 

무의미는 삶의 충만함을 저해하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것이다.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것들을 어쩌면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과학은 결코 신화를 대신하지 못하며 그 어떤 과학으로도 신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칼 구스타프 융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 인생의 곳곳에서 자기만의 사적 부활을 꿈꾼다. 일 년의 끝과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그저 TV를 통해서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는 느낌.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칠지라도 저마다 스스로와의 소중한 약속을 시작하는 시간. 왠지 술 담배도 끊고 아침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환희. 우리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렇게 짜릿한 영혼의 부활을 꿈꾼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느끼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생의 시작처럼. 네오는 지금 마치 2199년에 재림한 사이버-예수처럼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탱크: 안녕, 잘 잤어?

네오: (매트릭스와 연결된 몸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목뒤를 보며) 넌 구멍이 없…….

탱크: 그래, 난 구멍이 없어. 나와 도저 형은 진짜 세상에서 100% 구식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시온의 자녀거든.

네오: 시온?

탱크: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파티가 열릴 곳이지.

: 시온은 도시야?

탱크: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지.

네오: 어디 있는데?

탱크: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도 따뜻한 지구의 중심부에 있어. 우리가 오래 살면 갈 수도 있겠지. 젠장! 모피어스가 맞다면 네 능력을 정말 보고 싶어. 이런 얘길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네가 라면, 정말 그렇다면……. 정말 신나는 거지!

 

 

가장 거룩한 자는 세계를 태아와 같이 창조한다. 태아가 배꼽 부위에서부터 성장해 가듯이, 신은 배꼽에서부터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며, 거기서부터 그것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지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은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요마(yoma)세계의 창조는 시온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40.

 

 

 

 

탱크가 느끼는 시온을 향한 감정은 세계의 중심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이 혹독한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파티를 열 장소, 시온. 그곳은 2199년 매트릭스와 싸우는 전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네오에게도 이제 매트릭스라는 강요된 고향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새로운 그리움의 거처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낯설고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네오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 매트릭스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연산인간으로만 이루어진 도시라니!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일까.

 

그러나 아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이르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임을 확인하기 위한 갖가지 미션을 준비한다. 첫 번째 훈련. 그것은 스파링 프로그램이다. 각종 무술과 담력을 훈련하면서 동시에 시험하는 가상 프로그램 속에서 네오는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무공을 쌓아올리게 된다. 유도, 태권도, 취권, 쿵푸 등 각종 무술을 연마하며 네오는 어느새 모피어스에게 도전하게 된다.

 

 

네오: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한 눈빛으로) 이제 쿵푸를 할 줄 알아요!

모피어스: 보여줘 봐. 이건 스파링 프로그램이지.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현실과 비슷해. (네오의 현란한 액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아! 적응력, 순발력 모두 좋아.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냐. (정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동작으로, 자기만족에 흠뻑 취해 있는 네오를 가볍게 제압해버리며 살짝 미소 짓는다.) 이봐, 방금 내가 어떻게 이겼지?

네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이 너무 빨라서요.

모피어스: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네오: (네오는 이곳이 가상의 스파링 프로그램 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다시 동작을 시작한다)

모피어스: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

네오: (이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모피어스: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시온에서 기독교 신화를 떠올렸던 관객은 모든 걸 버려, 마음을 열어!’라고 외치며 동양의 무술을 가르치는 모피어스를 보며 장자(莊子)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술을 기술의 연마로 생각했던 네오가 드디어 가상과 현실을 벽을 뚫고, 타자와 자신 사이에 놓인 소통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순간. 그는 장자가 말했던 허심(虛心)’의 경지를 터득한 셈이다. 장자의 말처럼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법[以無翼飛]’을 배우는 것이며,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친숙한 세계를 버리고 트임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채움을 위한 비움이 아니라, 트임을 위한 비움. 정보와 지식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워 네가 자유로이 드나들 존재의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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