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날마다 응접실에서 ‘상벌수여’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반항에도 징벌이 가해지는데, 중대한 위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리 가벼운 과실이라도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메트래에서는 심지어 쓸데없는 말 한마디까지도 처벌된다. 부과되는 처벌 가운데 주된 것은 독방 수감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6쪽
푸코는 근대적 감옥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에서 찾는다. 수도원과 감옥과 학교와 군대의 훈육 프로그램이 황금 비율로 결합되어 있는 곳. 수감된 아이들이 ‘매를 맞느니 차라리 독방 수감이 훨씬 좋다!’고 절규하던 곳. 메트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1840년이야말로 푸코가 규정하는 ‘근대적 감옥의 탄생원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현대인들은 ‘좀더 나은 감옥’을 갖게 되었는가. 마리와 크루츠를 추격하던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의 태도를 보면, 현대인은 언제든 감옥 바깥에서도 감옥 못지않게 철저히 감금될 수 있는 신체가 된 것 같다. 현대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굳이 감옥의 각종 시설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터넷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정보화 감옥의 죄수가 된다.
콩클린: (지도 위의 노란 표적을 가리키며) 그래, 이 노란 표적은 뭐지?
요원: 그녀가 97년에 몇 개월 머문 곳입니다. 리옹 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콩클린: 이곳들이 표적이야!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 위반! 뭘 해도 좋아! 이 장소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할 수만 있다면 말이야.
(……)
요원: 국제정화를 포함해, 그녀 가족들의 통화 내역을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2시에 파리에 있었어요. 비행기는 못 탔을 거예요, 기차는 들킬 위험이 너무 많고 그는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할 테죠. 우리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이슨과 마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한다.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위반.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어디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현대사회는 감옥 바깥조차 감옥의 시스템으로 통치되는 개방형 원형감옥일지도 모른다. 마리 가족들의 전화를 깡그리 도청하고 마리의 최근 행적을 조회해본 결과, 제이슨과 마리의 위치는 도주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발각되고 만다. 극도로 예민한 제이슨 또한 마리의 오빠 집에서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방문한 이 집에 마리의 오빠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있다니. 혹시 나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딜 가나 그들은 분명 곧 나를 찾아낼 텐데, 아무리 도망친들 뭐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꼭 밝혀야만 할까?
마리: 여기서 뭐해요?
제이슨: 애들 걱정이요, 잘 수가 없어요.
마리: 애들 깨겠어요, 나갑시다.
제이슨: (전에 없이 흥분하여 평정을 잃고) 난 더 이상 내 존재가 궁금하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알 필요 없다고요.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겠어요. 내가 누구이든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안 써요! 우린 돈이 있어요! 숨어 살아요! 그럴 수 있겠어요? 당신도 그럴 수 있겠죠?
마리: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 길고도 긴 밤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제이슨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자신의 신원을 알든 모르든 그는 지금 ‘제거 대상’일 뿐이다. 마리와 제이슨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나긴 밤이 끝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온다. 이른 아침부터 제이슨은 자신을 둘러싼 ‘포식자’의 기운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제이슨은 마리와 가족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자신을 추격하는 침략자를 멀리 야외로 유인한다.
이번에 제이슨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트레드스톤 요원(클라이브 오웬)은 한층 현란한 사격솜씨와 화려한 액션으로 제이슨을 압박한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이 한바탕 끝나고. 어떤 언어도 없이 오직 총으로만 ‘의사소통’하는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총격전. 이제 총을 잡는 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의 제이슨 본은 마침내 요원을 죽음 직전으로까지 몰아간다. 죽어가는 요원에게 총신을 겨누고 마지막으로 질문하는 제이슨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르는 신원 미상의 부랑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관객의 눈에 그는 최고의 첩보원으로 ‘완성’되었다.
제이슨: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누구야? 전부 몇이나 돼?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요원: 난 혼자서 일해, 너처럼. 우린 늘 혼자 작업하잖아.
제이슨: (‘우리’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무슨 말이야?
요원: 너나 나나 트레드스톤 소속이잖아.
제이슨: 트레드스톤?
(……)
요원: 너, 늘 머리 아프지?
제이슨: 응.
요원: 나도 머리 아파 죽겠어. (……) 그가 널 죽이라고 했어. 나를 봐……. 그가 널 해치려는 것을 알겠지?
요원을 죽이고 제이슨은 살아남는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은 ‘훈육 프로그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훈육과 세뇌로, 기억을 상실했을 때조차 몸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이 엄청난 살인기술의 흔적들. 자기가 누구인지는 깡그리 잊었어도 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이는지는 잊어버리지 않은 신체의 놀라운 기억. 제이슨은 정당방어의 논리로 상대방을 죽이긴 했지만, 마치 자신의 ‘형제’를 죽인 듯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죽어 버린 그도 역시 제이슨처럼 특수요원 훈련을 받은 트레드스톤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를 훈련시킨 프로그램은 정확히 제이슨을 훈련시킨 바로 그 훈육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처참한 살육을 ‘프로그래밍’한 자들은 마치 두 사람을 ‘게임의 파이 1, 2’처럼 취급하며 멀리서 그들의 격투를 ‘관람’할 것이다. 프랑스의 악명 높은 메트래(Mettray) 소년 감화원의 교육 프로그램만큼이나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 또한 고도의 ‘정신 성형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메트래에서 원장과 부원장은 (……) 행동을 다루는 기술자, 다시 말해서 품행을 다루는 기술자이자, 개개인을 뜯어고치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그들은 순종적이고 동시에 유능한 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컨대 그들은 하루 9~10시간의 노동을 통제하고, 분열식·체조·소대훈련·기상·취침, 그리고 나팔과 호각소리에 따른 행진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시키고, 청결을 검사하고 목욕을 감독한다. (……) 신체의 조립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지식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고, 기술의 습득은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적성의 획득은 권력관계의 확립과 뒤얽힌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7쪽.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