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직권력이 나의 권력?
푸코는 주먹다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용기란 육체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규정했다. 용기, 그것은 용기 있는 육체다. (……) 노동자 계급의 노동이 아니라, 육체가 착취당한다. 시민들은 군대식 규율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훈육되고 길들여지며 그 위에 권력이 행사된다. 감금 체계는 육체들을 가둔다.
-풀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22쪽.
자신을 죽이러 온 요원을 살해한 후, 제이슨 본은 비로소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나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곁의 그녀, 마리다. 그는 마리의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마리에게 주기로 작정한다. 트레드스톤의 보이지 않는 원형 감옥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니까. “모두 가져가요. 끝없는 싸움이에요, 마리. 당신은 빠져요, 나한테서 떠나요.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들었어요. 마음껏 쓰면서 살아요.” 마리는 자신을 향한 제이슨의 진심을 읽어내고 망설이지만,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일단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그렇게 찾은 내가 결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만 못하다면,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제이슨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되찾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이름도 가족도 출생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 나 자신의 인생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훈련된 인간일 것이다.
마리를 떠나보낸 후, 제이슨은 트레드스톤과 직접 교섭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나를 찾기 위한 수동적인 대처가 아니라,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싸움을 걸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과거의 나’가 결코 되찾고 싶지 않은 나라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제이슨은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마리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제이슨: 네가 보낸 사내는 죽었다. 그러니 어서 대화를 시작하자.
콩클린: 그 여자는?
제이슨: 그녀는 죽었어.
콩클린: 안됐군. 어쩌다 죽었어?
제이슨: 방해가 되더군. (……) 파리에서 5시 반에 만나. 오늘, 퐁네프에서. 혼자 와, 다리 한가운데까지 혼자 와서 거기서 재킷을 벗고 동쪽을 봐.
그러나 콩클린은 약속 장소에 혼자 오지 않는다. 그는 조직의 기동력과 조직의 권력 없이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의 허물을 벗기고 나면 한없이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일 것만 같다. 조직의 권력이 곧 나 자신의 권력이라 착각하는 인물의 전형인 것이다. 반면 제이슨 본은 조직의 허물을 벗겼을 때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나는 인간이다. 비록 엄청난 사건 뒤의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제이슨의 등에 두 발의 총을 쏜 옴보시 덕분(?)에 제이슨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이슨은 결코 조직의 논리로 자신을 삶을 덮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결국 콩클린의 숙소에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직의 견고한 탈을 벗긴 인간 콩클린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잠들기 직전일 테니. 제이슨의 갑작스런 등장에 겁에 질린 콩클린, 이제 그의 입에서 제이슨의 비밀이 누설될 차례다.
제이슨: (겁에 질린 콩클린을 향해 총을 겨누며) 총 버려!
콩클린: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그러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제이슨: (……) 네가 트레드스톤이야?
콩클린: 내가 트레드스톤이냐구? 무슨 얼어 죽을 소리람? 아주 미쳤군.
제이슨: 당장 설명하란 말이야!
콩클린: 우린 한편이었잖아.
제이슨: 어떻게 한편이었지?
콩클린: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이야?
제이슨: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난 누구지?
콩클린: 넌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야!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지! 넌 빌어먹을 대 실패작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돼버렸어도, 넌 나에게 경과보고를 해야 해. 대놓고 죽이라고 널 보낸 게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라고 널 보낸 거야. 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널 보낸 거야!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흑인 해방이 범죄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독약, 방화, 그리고 때때로 폭동까지도 사회적 조건의 극단적인 비참을 입증하는 것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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