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나의 정치적 자유는 곧 나의 반대파의 정치적 자유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는 내 의견을 존중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우리는 실제로 그 ‘원칙’이 지켜지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순전히 ‘나와 다르다’, 혹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얼토당토않은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신상 정보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감시당할 위험에 처해야 한다. 미네르바 사건은 수십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정보통신법을 이용해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든 한국판 제이슨 본 사건이었다.
제이슨 본은 ‘그들의 이해관계’(CIA의 비밀조직 트레드스톤)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세계 어딜 가든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이슨 본이 계속 ‘죽었다’고 알려져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제이슨 본은 ‘나는 죽었다’는 ‘기록’과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제이슨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추격하고 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들이 마리까지 추격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제이슨은 마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려 한다.
제이슨: 당신, 경찰한테 가요. 당장, 일이 악화되기 전에 가야 해요.
마리: 나 혼자서요?
제이슨: 괜찮을 거예요. 내 여권을 가져가요, 알겠죠? 이걸 보이란 말예요. (……) 있었던 대로만 진술해요. 경찰은 당신을 믿을 거예요. 믿어야만 해요. 마리, 여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요. 안전하지 않다고요.
마리: (……) 도대체 그들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어떻게 알죠?
제이슨: (설명하기 난처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난,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게 다예요.
마리: 날 위해? 경찰에 날 혼자 보내는 게 어떻게 최선이죠?
제이슨: 일부러 보내려는 것 같아요? 난 뭐 좋은 줄 아냐고요?(제이슨 본 자신을 현상수배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난 이 남자와 사진에 대해 전혀 몰라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예요! 함께 도망 다닐 순 없어요. 안돼요. 평생 도망치면서 이렇게 살겠죠. 누구로부터의 도망인지도 모른 채. 날 쫓는 이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네, 난 여기 있어야 해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 해요.
마리는 본능적으로 경찰조차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마리는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게 진술해도 경찰이 자신을 믿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녀는 하루 만에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가치관이 완전히 전복되는 것을 경험해버렸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이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리의 입장에서는, 바로 어제 스위스 길거리에서 낯선 남자 제이슨과 이야기하던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촬영되어 바로 오늘 아침 프랑스 파리의 현상수배 전단지에 붙어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저 이 남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조차 수배대상이 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의 본능은 역설적으로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남자뿐임을 직감한다. 아무런 가시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좌충우돌하는 이 남자의 진심만은, 믿고 싶다. 운전대를 잡은 제이슨은 코앞에서 서성이는 경찰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마리, 당신이 이 차에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마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안전벨트를 맨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마리.
제이슨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제 제이슨은 두 배로, 아니 천 배로 더 위험해졌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한 인간이 타인의 목숨까지 지킬 수는 없음을 알기에. 그날 밤 제이슨은 마리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주고 염색해주며 어제보다 더욱 깊어진 마리의 서늘한 눈빛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고, 그 위험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한편 트레드스톤은 제이슨 본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제이슨 본은 한 사람이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 자체니까. 제이슨이 기억을 상실해도 제이슨 본이라는 살인무기를 만들어낸 그들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름없어요. 지휘 통제를 따르죠.” 이제 트레드스톤의 입장에서는 제이슨과 마리를 추격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마리의 신상정보를 모조리 캐낸 그들은 마리의 동선을 예측함으로써 제이슨의 동선도 함께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마리가 체류한 모든 장소를 샅샅이 찾아낸 트레드스톤은 마리의 가족들의 전화를 거리낌 없이 도청하고, 마침내 마리의 다음 행선지를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예측해낸다. 마리의 이복오빠 명의로 된 외딴 집, 그곳이 마리의 다음 행선지였고 그녀가 아는 한 가장 안전한 장소였던 것이다.
마리의 오빠와 그의 귀여운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처음으로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의심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정이 눈물겹게 부럽다. 혹시 나 때문에 이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새직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러나 내 몸속에 입력된 이 소름끼치는 정보들은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날 이토록 무서운 인간병기로 만들었을까. 나는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인가. 나의 두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세뇌되고 훈련된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인간 병기인가. 제이슨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알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제이슨 본’ 못지않게 신출귀몰했던 미셸 푸코는 자신이 ‘위험인물’로 분류되는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푸코를 해고한 대학 당국은 물론, 푸코가 실천했던 각종 저항운동을 혐오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제이슨 본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푸코는 자신을 ‘기성제도의 인식’의 그물로 가두려는 사람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언제나 그 그물을 빠져나오는 데서 저항의 쾌락을 찾았다. 그는 정신의 ‘건강’이라는 획일화된 기준 자체를 철저히 의심했다. ‘건강’이라는 또 하나의 획일적 기준이야말로 우리 인식의 복잡성과 모호성 그 자체가 지닌 창조적 긴장을 파괴하는 폭력이기 때문이었다.
Q: 선생님(푸코)께서는 왜 해고당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내가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학생들의 지적 건강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적활동에 있어서의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비밀동조자이며 비합리주의자이고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미셸 푸코, 럭스 마틴과의 대담 중에서, 198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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