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별을 ‘살아내는’ 법] - 14. 진정한 애도의 순간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과 지그문트 프로이트[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별을 ‘살아내는’ 법] - 14. 진정한 애도의 순간

건방진방랑자 2021. 7. 24. 14:22
728x90
반응형

14. 진정한 애도의 순간

 

 

상실된 대상의 그림자가 주체에게 드리워진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애도와 우울증중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자신의 리비도의 상당 부분을 탐구에 대한 충동으로 승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유년의 기억중에서

 

 

애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어쩌면 함께 슬퍼할 사람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가장 비슷한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 혹은 나의 아픔에 이러쿵저러쿵 토를 달지 않고 다만 그 끝나지 않는 슬픔의 통로를 함께 나란히 걸어줄 사람을 만나는 것. 애도의 소울메이트를 만나는 것은 이 슬픔의 늪을 건너가는 데 더없이 중요한 일이다. 루디는 비로소 그 슬픔의 친구를 찾아낸 것이다. 부토 소녀 유와 함께 루디는 아내를 찾아 떠나는 마지막 여행을 준비하기로 한다. 그녀와 함께라면, 이 마지막 여행이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내 아내가 여행하고 싶어 해. 너도 같이 가줄래?” 소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루디는 잠든 막내아들 칼에게 말없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아내의 유품과 자신의 짐을 모두 챙겨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다.

 

죽은 후에야 남편으로부터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의 꿈을 이해받게 된 아내 트루디. 트루디가 평생 가보고 싶어 했던 그 후지산. 루디는 후지산이야말로 루디가 죽은 아내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장소임을 깨닫는다. 아내와 평생 살아온 집 곳곳에 남아 있던 후지산의 풍경화는 어쩌면 아내가 끝내 추지 못한 부토의 이상적 무대가 아니었을까. 소녀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며 루디는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뜬다. 그러나 후지산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부토 소녀 유는 후지산이 아주 수줍음이 많은 남자라고 소개한다. “구름 속에서 잘 나오지도 않아요.” 정말 후지산은 그토록 기다리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설렘을 등 뒤로 한 채 구름 속에 한사코 그 눈부신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후지산 근처의 숙소에 묵으며 두 사람은 후지산이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창문부터 열어젖히지만 후지산은 여전히 구름 속에 숨어 그 찬란한 자태를 숨기고 있다. 그러는 동안 루디의 병세는 점점 악화된다. 아내는 남편의 병을 알려주지 않았지만, 이제 루디는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가는 길인데, 모든 것이 완벽해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녀와 만나는 가장 아름다운 혼자만의 축제를 준비하는 루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애도의 제의를 준비하는 그의 마음은 11초가 아쉽다.

 

 

장송 블루스(Funeral Blues)

W.H. 오든

 

세상 모든 시계를 멈추고, 전화선도 끊어버려라.

개들에게 뼈다귀를 주어, 더 이상 짖어대지 않게 하라.

피아노를 침묵하게 하고, 북은 감싸버려라.

관을 가져오고, 조문객을 부르라.

 

비행기를 머리 위에 띄워 탄식하며

하늘에 글자를 쓰게 만들어라. ‘그는 죽었노라.

비둘기의 흰 목에 검은 상장(喪章)을 두르고,

교통순경에게 검정 목장갑을 끼워주어라.

 

그는 나의 동, , , 북이었고

나의 월, , , , 금이었고, 일요일의 휴식이었네.

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네.

사랑은 영원하리라 생각한 나는 틀렸으니,

 

이제 별들도 필요 없다. 별빛도 모두 꺼버려라.

달은 감싸버리고 해도 없애버리라.

바닷물은 쏟아버리고 숲은 쓸어버려라.

이제 그 무엇도 소용없으니.

 

 

인용

목차

전체

시네필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