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 시간’은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것일까
타임 리프 능력을 갖게 된 마코토처럼 시간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시간을 매일 반복하게 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사랑의 블랙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국가대표 에고이스트인 TV 기상 통보관 필 코너스(빌 머래이)다. 그는 매년 2월 2일에 개최되는 성촉절(Groundhog Day) 취재를 위해 펜실베니아의 펑추니아 마을을 방문한다. 성촉절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2월 2일에 마못(북미산 다람쥐)이 자기 그림자를 보면 겨울이 6주나 길어진단다. 함께 일하는 PD인 리타(앤디 맥도웰)의 눈에 비친 필은 출세와 성공에만 눈이 먼데다가 공격적인 시니컬함으로 무장하여 타인에게 상습적인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필은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실현하는 데 방해되는 것은 모두 야멸치게 끊어낸다. 늘 그렇듯 형식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촬영을 마치고 곧바로 떠나려 했던 필은 폭설로 길이 막혀 펑추니아로 되돌아온다.
성촉절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낡은 호텔에서 눈을 뜬 필은 어제와 똑같은 라디오 멘트를 듣게 되고, 분명히 성촉절 취재를 마쳤건만 마치 오늘이 축제인 양 부산하게 술렁이는 마을의 모습을 보고 경악한다. 그날부터 2월 2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몽이 시작된다. 자신에게만 시간이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 필. 전설처럼, 마못이 자기 그림자를 본 탓일까. 필은 건강진단을 받아보기도 하고 정신과 상담까지 받아보지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어떻게 해도 반복되는 오늘을 바꿀 수 없음을 알게 된 필은 결심한다. “내일이 없다면 어떨까? 내일이 없다면 인과응보가 없어지겠지. 그럼 책임을 안 져도 되니까 아무 짓이나 해도 되겠군! 그렇군, 원하는 건 무엇이나 해도 되는 거야.”
성격대로 가장 나쁜 상상만 골라 하는 필. 그는 ‘못된 투명 인간’처럼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곧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도 좋다는 편의주의적 사고에 몸을 맡긴다. 자신에게만 왜 시간이 반복되는지에 대해 어떤 성찰도 시도하지 않는 필. 그는 닥치는 대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말갛게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체중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폭식을 하는가 하면,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에게 청혼을 하기도 하고, 다음 날을 걱정하지 않으며 초등학교 여자 동창과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악한 투명인간 놀이’에도 금방 지쳐버린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보낸 가장 행복했던 나날을 떠올리며 왜 그런 날이 반복되지 않고 하필이면 자신이 가장 기억하기 싫은 날이 반복되는가를 자문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시간을 건너뛰는 기상천외한 노하우를 습득하게 된 마코토도 처음에는 변화된 시간 개념에 대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은 채 ‘시간 여행의 이점’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마코토는 ‘야호, 타임 리프 짱이야. 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승리감에 도취된다. 그녀에게 제일 먼저 다가온 시간 여행의 행운은 동생에게 빼앗긴 푸딩을 되찾는 것이었다. 아니, 동생이 냉장고 안의 푸딩을 꺼내먹기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녀는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운 나빴던 하루를 삭제하고 편집하고 윤색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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